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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하다
2019년 05월 21일(화) 10:22 [성주신문]
 

↑↑ 최 필 동
수 필 가
ⓒ 성주신문

인류는 약 6천만 년 전 서남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의 '글자'를 썼다는 것이 현재로선 정설로 남아있다.

기원전 27세기 이전에 세계 최고 문명을 이룬 곳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지역인데 그 수메르인들이 최초로 만든 글자가 이른바 상형문자이다. 그 문자로 기록한 것이 대출(貸出) 기록과 세금에 관한 것이었다니 글자의 시작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글자는 말과는 달리 곧 '무엇이 어떻다'라는 흔적을 남기는 도구이므로 고대 중국인들은 그 글자로 죽간을 만들었고, 그리스·로마인들은 파피루스(고대 나일강 유역에서 식물성 섬유로 만든 종이)를 사용해서 글자를 기록했다.

그 기록은 말로 시작하고 그 말은 글을 동반해 오늘의 긴 인류의 역사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 말과 글, 즉 어문의 본령이다.

지금 언급한 것은 글자의 '세계사적 얘기'이고, 우리말과 글이 오늘날 쓰는 어문이 되기까지 그 긴 여정의 아주 작은 일부라도 알고 싶던 어느 날, 소파 방정환(1899~1931)이 쓴 '만년 셔츠'를 보았다.

"니(齒)업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는가?…(중략)…물어도 손드는 학생이 업더니 별안간 '녯!' 소리를 지르면서 긔운좃케 손을 든 사람이 잇섯다"라는 내용은 오늘의 어문이 우리말과 글이 되기까지를 축약해 보여준다.

얼마 전 S그룹 신입사원 공채시험에 '겸양(謙讓)하다'의 반대말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그 답은 '잘난 체하다'의 의미를 지닌 '젠체하다'인데 응시생들이 참 어려워했다고 한다. 또 '칠칠하다(일을 민첩하게 처리하다)'와 '서슴다(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를 묻는 문제도 나왔다.

나는 공채시험의 난이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젠체하다'는 말의 어원을 알고 싶었다. 물론 사전에도 나와 있지만 순수 토종어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거친 석기·골각기를 갈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이기가 되듯 말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 나름의 판단이다.

그런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어떤 용언은 처음 쓸 땐 어눌했지만 모두들 쓰고 통용하면서 정식 언어가 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며, 거기엔 정어(正語), 속어 구분도 없이 모두 지금 쓰는 제대로 된 어문이 됐을 것이다.

쏟아지는 새로운 외래어 말고 지금까지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위에 언급했듯 어떻게 쓰다 보니 표준말로 격상돼 사전에 오른 말도 있고, 단수로만 인정해 쓰다가 복수표준어도 있다. 가장 친숙한 이름 자장면(=짜장면), 쇠고기(=소고기), 고까신(=꼬까신), 봉숭아(=봉선화)와 우리 국기(國技)인 태권도의 품세(=품새) 등이다. 아마도 다양·다원화된 사회에 부응하기 위해 어문정책도 시의에 따른 것이 아닌가 싶다.

앞서 언급한 '칠칠하다'가 사전적 의미와는 다르게 '칠칠맞다(잘 못한다)'로 부정적 어법으로 변용이 되듯이 이와 유사한 '시치미 떼다'도 있다. 시치미는 조선시대 매를 이용해 사냥을 할 때 매 날개에 누구의 매인지를 알기 쉽게 단 명패를 말하는데 지금은 '알고도 짐짓 모르는 체하다'로 쓰이고 있다.

또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좁은 법당 안에서보다 넓은 마당에서 법회를 한다는 뜻인데 어수선하거나 난장판을 빗대는 데 쓰이고 있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될 대로 되라'는 '이판사판(理判事判)'. 이판은 참선과 경전 공부 등 교리를 연구하는 승려, 사판은 절의 운영 등 사무를 보는 승려를 합친 말인데 본래의 뜻과 영 다르게 쓰이고 있다.

또 술자리에서 '권커니 잣커니'의 뜻을 가진 '수작(酬酌)'이 있는데 요즘은 상대를 비하할 때 '웬 수작이냐'와 혼용을 하니 이도 문제이다.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는 본래는 조감도인데 그가 까마귀(烏)와 새(鳥)를 구분하지 못해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니라 이른바 전위예술로 일세를 풍미했던 귀재이고 모던보이인 그의 명성에 맞게 썼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오감도는 사전에 없어도 오·조 구분 없이 써서 통용이 되니 이를 어쩌나?

연산군이 여색에 빠져 전국에서 선발한 기녀들을 '흥청(興淸)'이라 했는데, 폐해가 너무 심하니 거기 '망(亡)'을 붙여 '흥청망청'이라는 퇴폐적 말이 생겨났다. 호랑이라는 이름도 18세기 이전에는 '범'이었는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어 거기 호랑이와 상충하니 이를 비켜가느라 범 호(虎)와 이리랑(狼)을 합쳐 호랑이라 부르게 됐다.

속담이 나오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나타내고 사물을 콕 집어 정확하게 쓰는 속담을 앞으론 바꾸거나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꿀 먹은 벙어리'라거나 '장님 코끼리'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례이니 삼가달라는 것이다.

제3공화국일 때 면장선거 당시 우리 동네에서 한 분이 출마해 당선이 됐다. 그 선거 구호가 당시로는 이색적이게 '칠칠한 우리 일꾼…'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그는 학식과 유학적(儒學的) 식견도 높았던 우리 법산 최씨 문중의 대종손(崔晶坤·호 竹下)이었다. 온 향내가 그 구호에 맞는 인품을 가졌다고 모두 인정했으니 그야말로 '명실공히'였다. '칠칠하다'를 50여년도 더 지나서 들으니 감회가 새롭게 떠올라 적어보았다.
성주신문 기자  sjnews567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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