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 기사쓰기 | 전체기사보기
정치/행정 사회/문화 학교/교육 NIE 기획연재 지난뉴스 포커스초대석 이 사람을 칭찬합니다 사설 칼럼 독자마당 출향인 종합 자유게시판 제보 구인구직매매 동창회/단체 성주방송 성주뉴스 광고 시민기자영상 성주교육뉴스 성주 12경 성주군정뉴스
최종편집:2020-08-10 오후 05:38:44 
전체기사
뉴스 > 독자마당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성주 법산
2020년 07월 28일(화) 16:05 [성주신문]
 

↑↑ 최필동
수필가
ⓒ 성주신문



나의 고향 '성주!'. 성주라는 이름은 신라 본피현으로 시작하여 신안현, 경산부 등을 거쳐 1308년에는 조곡산에 어태(御胎)가 안치됐을 땐 성주목으로 격상됐다. 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는 동안 8번의 군명이 바뀌어 지금은 성주군이 되었다. 그런데 처음 이름이 본피현인데, 신라시대 씨족 중심으로 행정 구역을 6부로 나눌 때 사량부, 본피部 등이 있었고 이 본피부가 우리 성주의 본피현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곧 생기기도 했다.
 
옛 행정구역인 주군현(州郡縣)에서 '州'의 의미는 좀 다르다. 경상도의 경은 경주의 '경'과 상주의 '주'를 취해 경상도가 된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주의 '주'도 그런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아 자그만 자존심을 가졌다. 더구나 우리 성주가 한때 대구府 일부와 북으로는 충청도 일부까지 광역 웅도일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일전, 지난 2018년 8월 15일에 '독립유공자 건국포장'을 받은 최은동(崔殷東) 절충장군의 구지(舊址)를 보러 법산을 갔다. 구지를 돌아보고 오는 길목 마을 몇 곳을 보니 하도 많이 변해 마음이 무거웠다.
 
6·25전쟁 후 산업화로 가기 전 농업이 주산업일 때는 인구도 폭증하여 120여 호도 넘는 우리 영천최문 집성촌이었다. 집터가 없어 깊은 개골창 언덕을 벽을 삼아 움막을 지어 살던, 가난한 사람도 있었던 법산이 지금은 7,80호도 되지 않을 만큼 공가와 폐가가 보이니 그야말로 금석지감이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초가삼간, 고색이 창연한 전통의 기와집 등은 산업화 이전까지는 모두 온전했는데 지금은 고택도 헐고 산뜻한 현대식(양옥)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양은 번듯하지만 뭔지 모를 옛 정서가 묻혀져버려 못내 아쉬움을 감출 길이 없음도 사실이다. 좁디좁은 골목길, 다닥다닥 붙어 있던 초막들 사진이라도 찍어뒀으면 마을 500년의 역사 중 근세의 아주 조그만 '마을 연혁(沿革)'이라도 보존할 것인데, 좀 아쉽기도 하다.
 
나의 복지(卜地)였던 지금의 집은, 1800년대에 종조부가 지은 초가를 150여 년간이나 후손들이 사용하다 1962년에 헐고 새로 지은 기와집이다. 그 집 헐 때 보니 순전히 흙, 돌, 새끼와 나뭇가지, 꼬불꼬불한 서까래가 전부였다. 할아버지껜 죄송하지만 '토굴(토담집)'에 다름아니었다. 그래서 새로 지은 기와집을 60여 년이나 살았지만 공가가 된 지 5,6년이 됐으니 마당엔 잡초가 자라 몸채 사랑채 모두를 가릴 지경이었다. 숲 속에 집채가 서있는 형국이었다.
 
농사(논 30여 마지기)철의 타작마당은 흉·풍과 무관하게 '웃음 가득'이었던 마당에 웬 잡초라니, 우선 기가 막혔다. 보리, 나락 타작을 위해 황토와 진흙을 섞어 다져 평토 작업을 한다. 그래 논마당을 얼마나 깨끗이 했으면 '찰밥 뭉치를 굴려도 티끌 하나 묻지 않는다' 했을까. 그런 마당이 한 질 키의 잡초라니? 집 도량을 돌아봤더니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뒤안은 대나무만 무성하였고, 몇 그루 서 있었던 상수리나무는 한껏 자란 대나무에 치여 숨도 헐떡이는 것 같았다. 이런 현상을 '역사의 변전'이라 하는 건가? 참 서글픈 변전이었다. 넓은 의미의 인류 역사도 이런 과정을 거쳤을까···?
 
우리 법산은 '기와집 많은 동네'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많던 기와집이 많이 사라진 것도 문제지만, 예닐곱 명의 고용인(머슴)으로 광농을 하던 한 부잣집이 사라진 것이 더 충격이었다. 그 집은 조선시대 후궁들이 기거하던 서울 궁정동 '칠궁(七宮)'을 연상할 만큼의 솟을대문에 몸채, 사랑채 등 여섯 채가 있는 대가였는데 말이다.
 
그 가주(家主)의 풍채를 굳이 말해야 한다면, 항상 한 점 흐트러짐도 없이 위의를 갖춰 지팡이를 짚고 삼복에도 도포정장(道袍正裝)이 일상복인 분이었다. 장대한 체구에 은백색의 수발(鬚髮)은 바로 조선 사대부의 위엄과 기품이었으며 그 틀거지에 누구도 압도당하고 만다. 빙기옥골(氷肌玉骨)은 이 분의 비유는 아닐까···? 게다가 성량(聲量)은 중후하여 만일 군중 앞에서 사자후(獅子吼)를 토한다면 그 위용에 군중을 휘어잡을, 일세를 풍미할 대정객의 풍의임이 분명했다. 더구나 출류발군(出類拔群)의 경세가였으며 유학자로서의 정연한 덕량에 모두 감응하는 유현(儒賢)이었다. 이런 분이 있어 우리 법산최문이 명가였다고 온 유림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고인이 된 지 오래지만 생전에 삼남의 네 군데(도산, 고산, 병산, 옥천) 서원장을 역임할 만큼의 근현대사의 대유학자였다. 사후 장례 시에는 호상자만 천여 명이 호종을 했으니 여기 첨언을 하면 사족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런 분의 고택이 훼철되어 군데군데 수풀이 우거지고 못다 치운 잔해들이 자그만 동산을 이뤘으니 탄식밖에 나올 게 없었다. 길가 담장만 겨우 부지해 있고 그나마 솟을대문만 만신창이(?)가 된 채 서 있었다. 길재의 시조 '5백년 도읍지···'를 무색케 하고 있었다. 역사의 변전은 이렇게 혹독하다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역사를 열어갈 한 '여정'이라 해야 할까? 감히 나는 '생사와 흥망이 무상'이라고만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와 내 집을 보니 그 집보다 내 집이 더 걱정이었다. '제 앞가림이나 하라'는 질책이 정곡을 찔렀다. 어른들 계실 때 구축한 보금자리를 당대에도 유지를 못 하다니 이런 불효가 어디 있으며 그 죄민함을 감출 길이 없다. 세태의 변전만을 원망할 일은 정녕 아니었다.
성주신문 기자  sjnews5675@gmail.com

- Copyrights ⓒ성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성주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성주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장마철 벼 도열병 발생 예방 방제
성주군 호우주의보 발령, 피해 잇따..
수륜농협, 기능성비료 MPK인산발효..
시원한 여름나기 위한 폭염종합대책
긴급복지지원 TF팀 교육 실시
“다양한 문화체험으로 더위를 이기..
월항농협 주부대학 반찬만들기 봉사
수륜면, 새마을지도자 도로변 환경..
미리 예방하는 대형화재
대동초 소체육관 개관식 개최
최신뉴스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인명 피..  
문재환 前부군수, 한국 정수대전 ..  
라이온스클럽, 총회 및 신입회원 ..  
성주군 호우주의보 발령, 피해 잇..  
신혼부부 대상 결혼장려금 700만원..  
자총 여성회, ‘성주愛 팡팡 투어..  
정희용 의원, 특별교부세 26억원 ..  
8월의 보약 ‘포도’  
한울림풍물패, 환경정화활동  
용암면, 친절로 민원인 응대  
“친절 맛집 성주읍 행정복지센터..  
수륜면, 새마을지도자 도로변 환경..  
벽진면, 주민만족 친절교육  
선남면 용신1리 재활용동네마당 환..  
새마을회와 함께 깨끗한 대가 만들..  
대동초 소체육관 개관식 개최  
수륜농협, 기능성비료 MPK인산발효..  
미리 예방하는 대형화재  
월항농협 주부대학 반찬만들기 봉..  
장마철 벼 도열병 발생 예방 방제  


발행인 인사말 연혁 편집규약 조직도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성주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10-81-11658/ 주소: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 등록일 : 2010년 9월 6일 / 발행인.편집인: 최성고
mail: sjnews1@naver.com / Tel: 054-933-5675 / Fax : 054-933-3161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08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