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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산 沈山 선생 문집 해제
2021년 01월 12일(화) 18:29 [성주신문]
 

↑↑ 침산 이수인(초상화)
ⓒ 성주신문

▶▶▶
1880년 5월 11일 성주군 대가면 용흥리에서 태어난 침산 이수인 선생은 성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듣고 일제의 침략 만행과 오적의 매국 행위를 성토했으며, 1919년 유림의 독립청원운동인 파리장서운동에 동참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다.
 성주군은 성주역사인물 재조명을 위해 2019년 10월 23일 침산 선생 학술발표회와 함께 '만장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이날 침산을 기리는 동시대 작품 100여점의 만장이 군청 입구에 전시됐다. 본지는 만장의 일부를 소개하며 침산 이수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본다.【편집자 주】

↑↑ (좌)척제戚弟 정년화鄭年和
(우)족제族弟 수목洙穆
ⓒ 성주신문


좌 ▶▶ 척제戚弟 정년화鄭年和

순수한 덕망은 이 고을에 드러나 淳然德望闡斯鄕
풍치는 산처럼 높고 물처럼 또 길도다 風致山高水又長
일찍 중국에 들어가 학문을 보충하고 早入中華充學問
늦게 우리나라로 와서 영광을 멀리하였네 晩來東國遠榮光
3세를 지극한 효도로 쌍전(雙全)하였고 雙全極孝連三世
팔우(八友)라는 아름다운 이름 일당에 걸었네 八友佳名揭一堂
천박한 나의 삶에 이제 의지할 곳을 잃었으니 淺薄吾生今失所
회포에 눈물을 흘리며 사양(斜陽)에 서있네 懷心和淚立斜陽


우 ▶▶ 족제族弟 수목洙穆

오늘 아침 침산(枕山)공을 곡하고 영결하니 今朝哭訣枕山公
만사가 황량하여 하나의 꿈만 같네 萬事荒凉一夢同
인후(仁厚)한 용모를 어디에서 다시 뵐까 仁厚容儀安更睹
지난 자취 추억하니 회한이 무궁하네 追思徃跡恨無窮
박식한 높은 이름 누구와 함께 짝할까 博識高名孰共倫
조존(操存)의 아망은 세상에서 어질다고 말하네 操存雅望世稱仁
여러 산의 물색은 누구를 위해 푸른가 羣山物色爲誰碧
적막한 누대에 밤의 달빛이 새롭네 寂寞樓臺夜月新



↑↑ 역자 강희대
성주향교 전교典校
ⓒ 성주신문


침산 沈山 선생 문집 해제








침산沈山선생문집 해제

침산(沈山)선생은 조선이 기울어가던 시기인 1880년 5월 11일에 성주군 대가면 용흥리에서 태어났다. 성(姓)은 이(李)씨로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휘(諱)는 수인(洙仁), 초명은 수석(洙錫)이다. 자(字)는 자유(子裕)이고, 침산(枕山)은 그의 아호이다. 부친(父親)이신 휘:조현[諱:祚鉉]과 어머니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둘째로 났다.

공(公)은 어린 나이인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이신 이주(伊洲)공의 가학으로 성장하였다. 공(公)의 부친이신 용호(龍湖)공께서 한주(寒洲)공의 문하에서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요사(夭死)한 것을 조부께서 항상 슬프게 여겨, 공이 10살이 되던 해에 가형(家兄) 수정(洙禎)과 함께 대포(大浦)의 대계(大溪) 이(李)선생에게 맡겨 수학(修學)하게 하였다.

스승 대계(大溪) 공께서는 공의 형제를 각별히 사랑하여 갑오년(1894년) 대란에도 우거(寓居)였던 거창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학문을 정진토록 할 정도였으니,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의리는 목숨이 위태로운 험난한 곳에서까지 이어졌었다. 공(公)은 스승께서 국권회복을 위해 망명의 길에 오르자 서슴없이 따라나서서 낯선 이국땅에까지 스승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노모가 걱정이 되어 홀로 고향에 돌아와서도, 일본 오랑캐들이 우리나라를 병탄(幷呑)하자 스승의 구국운동에 도움이 되기 위해 지금 러시아의 영토인 블라디보스톡을 왕래하며,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과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 등 제공들과 종유하였다. 보재(溥齋) 등과 협의하여 무역상(貿易商)을 가장하고, 자주 본국에 왕래하며 지사(志士)들과 연락하면서 그들의 계획을 도와 구국자금(救國資金)을 모아서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때는 일본의 강제적인 탄압으로 인해 외국의 왕래를 더욱 엄하게 살피고, 신표(信票)가 없는 사람이 나타나면 총으로 쏘아 죽이는 상황이었지만, 무려 4년 동안이나 잠행을 하였다. 그리고 스승께서 이역만리 타국에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자, 즉시 달려가 치상(治喪)을 혼자 담당하였다. 양례와 상사(祥事)에 모두 제문을 지어 치전(致奠)을 행하였는데, 그 모습은 스승을 부모같이 생각하고 심상(心喪)을 행하는 표본이라 할 만 했다.

기미(己未:1919)년에 면우(俛宇) 곽선생(郭先生)이 유림을 대표하여 파리의 평화회의에 장서(長書)를 보내어 나라의 원통함을 하소연하려 할 때에 공(公)도 개연(慨然)한 마음으로 연명(聯名)하였다. 이 일이 발각되어 일경(日警)에게 체포당해 6개월의 구금을 면치 못한 일이나, 족손 경환(慶煥)공이 광복활동을 하다가 발각되자 자결하는 것을 보고 통분하는 모습은 스승을 섬기는 의리뿐만 아니라, 우국(憂國)의 충정이 천성에서 나타난 것이라 말하겠다.

광복을 맞은 이후 정치의 변혁기를 만나 다시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 사문(斯文)을 돈독히 하여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회보계(會輔契)의 심설발문(心說發問)과 만귀정(晩歸亭)의 대학문목(大學問目)과 삼봉서당(三峯書堂)의 근사록의의(近思錄疑義)를 정심(精深)하기를 도모하였으며, 또 많은 서신(書信) 교신(交信)으로 허후산(許后山), 윤교우(尹膠宇), 곽면우(郭俛宇), 장회당(張晦堂) 등 모든 선생들에게 질의하여 공부를 더하였다. 또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 회천(晦川) 송홍래(宋鴻來) 제공과 함께 회동(檜洞)에서 강학하는 등 학문을 넓히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은 학문을 하는 후학(後學)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일들로 문집 제3권에 자세히 나타나있다.

작금(昨今)의 현실은 과학문명의 발달과 서구(西歐)의 물질문명의 유입으로 학교의 교육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윤리 교육을 중요시 하지 않고 오직 취업을 시키기 위한 직업교육에 치우쳐, 유학(儒學)에서 강조하는 인성(人性)교육이 점점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고 있다. 그런데 이번 공(公)의 문집을 번역하면서 지금보다도 더 어려운 시기에도 공(公)이 스승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모습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 선비로서 학문 정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시는 모습을 상상하니, 후학으로서는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아래의 시는 아마도 광복 후에 지우들과 가야산을 유람하며 홍류동에서 지은 작품인 듯한데, 감상해 보면

들으니 이곳이 선종(禪宗) 중에 두 번째라 하고 聞是禪宗第二方
남녘의 풍경에서 가장 유명하다네 南州風景最名長
아지랑이 오르는 산 폭포의 물이 모두 기이하고 山嵐水瀑皆奇玩
숲과 바위의 잎새와 꽃이 모두 특별한 향기를 뿜네 林葉巖花盡異香
맑은 경계는 인간의 세상이 아닌 듯하여 淸勝渾非人世界
번화한 곳이 모두 범궁의 담장이라네 繁華都是梵宮墻
매양 종소리 듣고 새벽을 소리로 깨우고 每聽鐘磬醒晨響
완연히 세속에 찌든 때를 씻어 시원케 하네 宛洗塵腔發爽凉


홍류동[紅流洞]
단애를 씻은 물을 홍류(紅流)라 부르니 丹厓濯水號紅流
영구(靈區)에 초입임을 알 수 있네 可識靈區始到頭
화살촉처럼 서있는 숲의 그윽함 속에 簇立長林幽趣裡
가운데 길은 구경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네 中通一路翫筇攸
술집에 가인들 많이들 앉아있고 佳人酒棧叢叢坐
시인은 풍정으로 걸음마다 쉬는구나 詩士風情步步休
연하(煙霞)의 선굴(仙窟)을 비웃는 것은 堪笑煙霞仙窟宅
분화한 물색에 도리어 근심이 생기기 때문이라 紛華物色反生愁

이런 시를 읽어 보면 고매한 시인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이제 특별히 하고자하는 말은 선생이 남의 선한 일을 들추어내어 세인들에게 알려주려고 애쓴 마음이 여러 곳에 보이며, 성리학을 궁구하여 오묘한 철학의 세계를 맑게 갠 하늘을 보듯이 열어주셨으니, 이 문집은 진실로 당당한 유학(儒學)의 정수(精髓)라 하겠다. 어느 한 문장을 소개하여 이것이 대표적이라 소개하기보다는, 이 문집을 한번이라도 정독한다면 은연중에 나타나는 사상의 세계를 읽는 이의 마음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유(丁酉)년 가을 선생의 손자인 현조씨가 나의 누추한 집을 방문하여 공(公)의 문집 필사본(筆寫本) 8권을 가져와 보이면서 필사본이므로 유실의 염려가 있고 또 어려운 한문(漢文)으로 되어 있어 후손들이 글의 뜻을 옳게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이야기 하면서 국역(國譯)하여 읽을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기에 그 효심에 감동하여 몇 달을 작업하였다.

그러나 본래 어문(語文)에 어눌한 사람으로 식자(植字)의 일은 대략(大略)하였으나, 죄송스러운 일은 다름이 아니라 인명(人名)의 주석(註釋)을 기록함에 전국적인 인물을 다 찾아 기록하지 못하였고, 또 성주에 거주하시던 어른들도 거의 찾아 기록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근ㆍ현대의 어른들이라. 인명사전에 등록되지 않은 분이 많아, 모든 분들의 약력을 다 기록하기에는 어려웠다는 점을 용서해주시기 바라며 해제(解題)에 가름한다.
성주신문 기자  sjnews567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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