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숭례문! 500년의 왕업이요, 반세기의 민국인데 겨레의 자존과 함께 한 순간에 사라져간 지 1주년이 되었다. 겨레의 얼이요 나라의 상징인 국보 1호 숭례문의 그 위용이 무참히도 화마에 허물어지던 날 우리들을 참담 비통 탄식 허탈 무력감으로 온통 천 길 만 길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이 나라 이 겨레 흥망과 성쇠와 영욕을 함께 해온 숭례문이 화마에 휩쓸리다니! 온 나라를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었던 숭례문 참화는 경천동지, 청천벽력,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 없는 황량감(荒凉感)만을 안기고 말았다.
선현의 뜻에 따라 세우고 천년 만년 이 겨레와 함께 번영을 구가하려 했는데, 민족혼의 숨결이며 정체성이며 자존심이며 만방에 떨쳐 가는 기상의 상징이었는데 아! 슬프고 원통하도다.
이 강역(疆域) 보우하며 의연하던 나라 기품, 늠름 위풍 웅자무비, 이 나라 웅비의 표상이던 숭례문! 5천만 가슴에 통한만 남기고 그렇게 허망히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 무슨 변괴였던가.
아직도, 그 웅자는 훼손됐지만 혼은 살아 있어 그래도 이 나라 이 겨레 지키려 반수(半隨)의 형체로도 의연히 서 있는 숭례문이, 다시는 이런 참화를 당하지 말라는 엄중한 질책인 듯, 경계(警戒)인 듯 서 있는 잔해가 우리들을 숙연케 한다. 준엄한 질타(叱咤)가 우리들의 의표(意表)를 찌른다.
와전옥쇄(瓦全玉碎)의 결연한 기왓장, 장공(匠工)의 손길 거친 괸 돌 하나, 한줌의 보토에도 재계치성(齋戒致誠) 올리고 단심공력(丹心功力) 다 드렸을지니 이 아니 유장(悠長)히도 이어온 민족혼의 총량적 결정체가 아닐 것인가? 600년을 연면히 이어 내린 겨레의 표상이며 자존이며 때로는 간악 무리 제국주의 말발굽에 짓눌리는 신산(辛酸)을 겪기도 하였고, 때로는 온 세계에 이 겨레 기상을 떨치기도 했던 우리들 영욕의 역사인 것을….
문화재가 민족혼이며 민족혼이 곧 문화재일지니 그 날 그 스러지고 무너지고 깨어지고 타버리는 민족혼 앞에서 이방인의 발을 구르는 탄식도 함께 있었다. 파란 눈의 이방인인들 귀중한 문화재 아끼는 마음이야 다를 수 있겠는가. 오죽했으면 ‘벌을 받았다’ 일갈을 했을까.
아! 이 무슨 국경을 뛰어 넘는 가슴 아픈 장탄식인가? 문화재 사랑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것을….
1년 전 장렬히도 아스러져 가던 그 날 그 숭례문의 가슴 저미던 참상이 다시 가슴을 짓누른다. 상실감에 흐느끼던 추모의 행렬들, 투박한 손끝을 떨며 제단을 향해 합장하던 어머니들,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던 교복의 학생들, 국화꽃 송이송이 그 고사리 손들이 다시 뇌리를 스친다. 그 정경을 차마 볼 수 없어 애써 외면도 하고 돌아서서 눈시울을 적시던 우리들이었다.
그 형해(形骸)를 보고 온 국민의 일시적 공황(恐慌)과 흩어졌던 마음을 추슬러 민족의 자존을 다시 세우려 온 나라가 나섰다. 그 나무 이름 자체만으로도 문화재요 ‘천연기념물’인 금강소나무가 전국에서 답지(遝至)하고 있다 하니 그 웅자 다시 볼 날도 그리 멀지 않으리라. 그 위용 다시 우뚝 서는 날 웅비의 이 나라 가호 하시고 굽어보시어 ‘동방의 빛’을 지나 세계를 경영케 하소서. 국가 진운을 열게 하소서. 국운 융성이 있게 하소서.
그 웅자 위용 다시 서는 날 춤추고 노래하고 감격에 겨워 뜨겁게, 뜨겁게 눈물 흘리리라. 다시 찾은 우리의 자존 자긍 신명을 바쳐 우러르고 혼신을 다 바치리라! 숭례문이여 길이 빛나소서. 대한민국이여 영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