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시골 어느 지방에 파스쿠알이라는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파스쿠알은 어느 날 사냥을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떤 개 한 마리가 그를 향해 짖고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들고 있던 엽총으로 그 개를 쏘아 죽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는 로라라는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을 했다. 로라와 함께 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타고 있던 말이 깜짝 놀라서 뛰는 바람에 로라가 말에서 떨어졌다. 그 결과 임신 중이던 로라가 유산을 했다. 화가 난 파스쿠알은 집에 돌아와서 칼을 가지고 말을 수십 군데를 찔러 죽여 버렸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에는 아내와 여동생과 함께 거리에 나갔다가 건달패로부터 희롱을 당했다. 화가 난 파스쿠알은 들고 있던 칼로 건달들을 찔러서 끔찍한 살인을 하게 되었다. 재판에 회부되어 10년 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분을 참지 못하여 주먹으로 벽을 치기도 하고 발광을 했다. 증오와 분노, 복수심으로 10년을 보냈다. 출옥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까 아내인 로라는 다른 남자와 마음이 맞아서 집을 나가고 없고, 연로한 어머니만 외로이 남아있었다. 울분을 참지 못해 술을 마시고 취해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것이 어머니의 목을 졸라서 결국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다. 끔찍한 존속살인죄를 범하고 파스쿠알은 다시 감옥으로 끌려갔다.
이 이야기는 1989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페인의 작가 까뮐로 호세 셀라의 대표작 ‘파스쿠알 드아르테의 일가’라는 소설에 나온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는 현대인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현대인의 가장 큰 단점은 자기 감정을 억제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을 그대로 폭발시키고 행동으로 옮겨서 결국은 자신의 인격과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일이 많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으면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다. 이에 분노하여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죽였다. 인류 최초의 살인은 분노를 극복하지 못해서 일어났다.
그 가인의 후예들이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분노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한 해는 분노의 고함으로 어지러웠다. 판단력이 풋사과 같은 어린 학생들로부터 민중의 대변이라고 자처하는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광화문 거리에서 국회의사당에서, 촛불을 들고 망치를 휘두르며 시끄러운 한 해를 보냈다. 그래서 남은 것이 무엇인가!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손상을 입은 것뿐이다.
상대방이 무슨 짓을 했든 간에 그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처럼 자기를 타락시키는 일은 없다. 우리가 원수에게 품은 증오나 분노는 그들의 행복보다 우리 자신의 행복을 한층 더 해친다. 그래서 불교의 ‘다암마 파다(진리의 길)’경(經)에서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않는 자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 가운데서 미움을 모르며 살아라”고 가르치고 있다.
잘 분노하는 자는 확실히 타인을 벌하기보다는 더 자기를 벌하는 것이다. 비록 정당한 노여움이라 할지라도 그 상대자에게 대하여 ‘그도 역시 불쌍한 인간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그 노여움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 무엇도 이보다 빨리 노여움을 풀게 하는 길은 없다. 왜냐하면 분노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불에 대한 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독일인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의 간증이다. 어느 날 나는 형제들과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모든 식구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조용히 내 방에 들어오시더니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얼마 동안의 침묵 후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아빠는 너의 속상함을 이해한다. 그러나 최소한 구텐 나하트!(안녕히 주무세요)라고 하는 인사는 해야 되지 않겠니? 우리가 내일 새 날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아빠, 엄마, 그리고 형제자매들은 내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장담하겠니? 그러니 오늘 밤 최소한 인사나 하고 자야 하지 않겠니”
그 날 밤 아버지의 말씀을 지금까지 50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인생의 교훈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가서야 아버지의 그 말씀이 성경 말씀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짖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그 후로 나는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인사는 하고 하루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