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년의 딸이 혼자 지내는 어머니댁을 방문했다. 아파트 문을 열자 뭔가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황급히 뛰어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태연히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급히 부엌으로 가서 가스불을 끄고 어머니에게 다그쳐 물었다. "엄마, 냄새 안 나?" 어머니는 왜 호들갑을 떠느냐는 얼굴로 "아참, 찌개 불을 안 껐구나."했다. 찌개가 다 졸아서 연기가 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얼마 전부터 어머니의 행동이 이상했다. 항상 단정하던 몸가짐이 최근에 와서 다소 흐트러졌다. 엄격하던 성격도 누그러져 곧잘 웃곤 한다. 총명한 분이었는데 기억력도 많이 나빠졌다.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치매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겁이 덜컥 났다.  서둘러 서울대병원에 가서 신경학적 진찰을 받았다. 그러나 이상소견은 뚜렷하지 않고 다만 후각신경 기능 손실로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의사는 짐작 가는 것이 있어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권했다.  예상했던 대로 커다란 종양이 양쪽 전두엽 가운데 있었다. 뇌의 전두엽은 판단과 행동을 지배하는 부위라 할 수 있다. 기억력·주의력 등은 물론 인격을 형성하고 도덕심을 갖게 한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예의를 갖출 줄 알고 주어진 상황에 알맞게 대응한다. 더워도 옷을 갖춰 입고 화가 나도 말을 순화해서 한다. 모두 전두엽의 역할 덕분이다.  양쪽 전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성격장애가 발생한다. 상황에 부적절하게 반응하고 툭하면 싸움을 한다. 막말을 하고 성적 관심을 공개석상에서 부끄럼 없이 표현하기도 한다. 타이르고 이해시키려 해도 소용없다. 구조적으로 통제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것도 전두엽의 통제 기능 상실에서 기인한다. 이 할머니는 전두엽 바닥의 후각신경이 종양에 눌려 냄새를 맡지 못한 것이었다. 언뜻 보면 치매와 비슷하다. 하지만 전두엽 증상과 함께 후각장애를 보이면 반드시 후각신경구 수막종을 의심해야 한다. 수술로 치료 가능한 병을 자칫하면 치매로 오진해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  쉽지 않은 뇌수술이었지만 종양을 성공적으로 제거했다. 수술 후 거짓말같이 할머니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조직검사에서도 양성 수막종으로 진단됐다. 일주일 만에 할머니는 건강하게 퇴원했다.  이상은 서울대학교 신경외과 김동규 교수가 `삶의 향기`에서 한 이야기다. 이 할머니가 건강하게 된 것은 자식들이 자주 찾아뵙고 부모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보인 덕분이다. 나이가 많아 그러려니 하고 무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첫째는 `관심과 배려`라고 했다. 효도는 곧 부모에 대한 사랑이요, 그 첫째는 부모에 대한 관심이다. `효(孝)`라는 한자는 `늙을老`자와 `아들子`자가 합쳐진 글자로 `아들이 늙은 부모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다. 효도는 자식이 부모를 머리에 모시는 것이다. 늘 부모를 생각하고 부모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낡은 울타리` 잡지에 박영애씨의 이런 글이 실렸다. 그녀가 고3일 때, 홀로 되신 어머니가 맏딸인 자신을 부르더니 말했다. "이제 3학년이 되면 취업반으로 옮겨줬으면 좋겠구나. 엄마가 네 동생 셋 다 고등학교까지 공부시키기도 너무 힘들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4남매를 혼자서 기르시는 어머니, 시장에서 생선 좌판을 하면서 동생들을 고등학교까지 공부시키기도 벅차다는 것이다. 엄마의 간절한 말씀에 그러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대학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몰래 진학반에서 공부했다.  드디어 대학예비고사를 보는 날이 다가오자, 남들은 대학입시라고 자가용에 택시에 자녀들을 모셔오건만 자기는 엄마 모르게 새벽에 혼자 집을 나섰다. 교문에 수많은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오전 시험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다들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자기는 아무것도 싸온 것이 없어 운동장에 나가 하늘을 보니 괜히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부유한 집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몇 번이고 훌쩍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교내 스피커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며 교무실로 오라는 방송에, 순간 겁이 났지만 조심스레 교무실을 찾아갔다. 선생님 한 분이 엄마가 전해달라고 놓고 갔다는 생선냄새 나는 김밥도시락을 주었다. 운동장에서 김밥을 먹는데, 눈물이 흘렀다. 김밥을 다 먹고 보자기를 싸는데 초등학생보다 더 못 쓴 어머니의 쪽지가 있어서 펴보았다. "시험 잘 봐라. 우리 딸 장하다."  박영애씨는 이렇게 썼다. "저는 그날,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했습니다. 오후 시험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텅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머니의 거친 손등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는 김밥을 싸시면서 얼마나 우셨을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서러운 눈물만 났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학입시를 치르지 않고 꿈을 접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번도 그때 일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때 제가 저 혼자만의 인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인생을 택한 첫 번째 선택이었으니까요."  박영애씨는 어머니에게로 관심을 돌리고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그것을 자랑했다. 성경은 말한다. "자녀들아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관심을 가져라).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2-3) (2016.5.8.)
최종편집:2024-05-17 오후 04: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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