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경복궁의 교태전과 강령전에서는 조선시대 왕실의 풍속 가운데 특별한 행사로 장태의식인 ‘세종대왕 자(子) 태 봉출의식’이 있었다.
이 날 행사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열린 행사로 1회 재연 행사 후 문화재청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 보태져 더욱 정려하고 장중한 태(胎) 봉출행사로 변모되었으며, 이날도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이번에 개최된 태봉출의식은 ‘성주참외축제’와 연계하여 축제 둘째 날인 오는 26일 성주군에서 재연 될 세종대왕자태실 봉안행차의 선행 의식으로 경복궁에서 성주로 출정하는 의식을 재연한 행사이다.
이 날 행사를 위하여 성주에서는 이창우 군수를 비롯한 관계자와 많은 군민들이 상경했고, 재경 성주향우회에서도 김상화 회장을 비롯하여 신동욱 성주문화후원회장, 이상희 전 장관, 도원회 도스컨설팅 회장, 여현동 전 성주중고 총동창회장, 장해익 현 회장 등 출향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성주에는 국가사적 제444호인 세종대왕자 태실을 비롯하여 태종태실(성주 용암면)과 단종태실(성주 가천면)이 조성되어 있는 전국최고의 길지로 정평이 나있다. 현재 조선시대 세 분의 왕(태종, 단종, 세조)과 세종대왕의 왕자 17분 및 원손 단종의 태가 안치된 태실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왕자 태실이 집중되어있어 조선시대 태실문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고장이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아래 태봉 정상에 위치한 세종대왕자 태실은 세종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에 조성되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19기의 태실은 왕실의 태실 의궤에 따라 만들어 졌으며, 왕자들의 태실이 한곳에 군집되어 조성된 유일한 형태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읽을 수 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했던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등 다섯 왕자들의 파괴된 태실 석물(石物)들에서는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등 귀중한 문화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장태의식은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행사로 태는 태아에게 생명력을 부여한 것으로 출산 뒤에도 소중하게 보관되었으며, 특히 왕실의 태는 국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여 더욱 소중하게 다루어졌음이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문헌에서 기록으로 남아 있다.
태를 소중하게 다루었음이 각종 문헌으로 전한다
이는 성종실록과 문종실록에 소개된 태장경의 구절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당나라의 일행이 저술한 ‘육안태’의 법에 말하기를 “사람이 태어나는 시초에는 태로 인하여 자라게 되는 것이며, 더욱이 그가 어질고 어리석음과 성하고 쇠함은 모두 태에 관계가 있다고 하여 이런 까닭에 남자는 15세까지 태를 간수하게 되나니 이는 학문에 뜻을 두고 혼인 할 나이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라 했다. 또한 “남자의 태가 좋은 땅을 만나면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고, 벼슬을 높이며, 병이 없는 것이요, 여자의 태가 좋은 땅을 만나면 얼굴이 예쁘고 단정하여 남에게 흠앙(欽仰)을 받게된다”고 했다.
문종실록의 태장경에는 “대저 하늘이 만물을 낳는데 사람으로서 귀하게 여기며, 사람이 날 때는 태로 인하여 장성하게 되는데 하물며 그 현우(賢愚)와 성이(盛裏)가 모두 태에 매여 있으니 태란 것은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태의 처리는 출산 전후부터 준비하여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더욱 소중하게 그 뒷처리를 하게 된 것이다. 민간의 경우는 대개 정결한 곳에서 태우거나, 땅에 묻거나 물에 띄웠으며, 왕실에서는 땅에 매장했다.
조선시대 장태 절차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눈다
조선시대의 장태 절차를 보면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세태(洗胎)와 안치, 즉 태아의 태반을 씻고 태항에 넣어 궁궐에 안치한다. 두 번째는 길일(吉日)과 장태지를 선택하고, 그 다음 장태에 필요한 인원과 물품을 준비하는 일, 그리고 태항을 누자에 안치하여 궁을 출발해 장태지에 도착 각종 제례와 태를 묻는 의식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장태의식의 모든 과정을 등록하고 보고하는 과정을 거친다.
경복궁 행사는 이러한 모든 절차 중 세종대왕자 태를 세태하는 의식과 장태지를 국왕께 보고하는 의식, 교지를 내리는 의식, 그리고 왕자의 태가 든 태항을 누자, 즉 가마에 안치하는 의식, 태실의 낙점지인 성주로 봉출하는 의식 순으로 각계의 고증을 거쳐 진행됐다.
장태 절차 중 세태(洗胎)는 100번을 정성 들여 씻고, 마지막으로 항온주라는 술로 다시 닦고 태 항아리에 넣는 의식을 말한다. 그 다음 개원통보(開元通寶)란 동전을 태 항아리 맨 아래쪽 중앙에 넣는다. 이는 ‘으뜸이 열린다’라는 개원의 뜻이 신생아에게도 전달되기를 축원하는 의미라 하겠다.
다음은 정성 들여 씻은 태를 태 항아리에 넣고 그 위에 기름종이와 남색보자기로 덮는다. 태 항아리는 태를 보관하려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 태 항아리는 분청사기와 순백자 두 종류로 만들어졌다. 분청사기 태 항아리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어 조선후기에는 순백자만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태 항아리는 태를 넣는 내호와 내호를 큰항아리에 넣는 외호로 2종의 용기를 한 벌로 제작하여 사용했다. 대개 태 항아리는 뚜껑 연꽃 봉우리형 꼭지에 네 곳의 구멍을 뚫고, 동체에는 네 곳의 구멍을 가진 돌출부위가 있어 사귀호라고도 한다.
그러나 분청사기의 경우 계양군을 비롯한 세종대왕자태실에서 출토된 태 항아리의 경우 사귀호 형식으로만 제작된 것은 아니다. 분청사기 태 항아리의 문양은 꽃무늬를 상감한 소위 인화상감기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소중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성주에는 사람의 일생 즉, 태어남(세종대왕자태실)과 삶(전통민속 한개마을), 그리고 죽음(성산고분군)의 생, 활, 사 문화를 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다.
오는 25일부터 열리는 ‘성주참외축제’는 세종대왕자태실 봉안행차, 영접의식, 봉안의식, 봉안축하연까지 조선시대 장태의식을 한눈에 경험할 수 있어 전통문화를 접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참외관련 체험은 물론 각종문화예술 공연과 전시, 문화체험 등이 다채롭게 펼쳐질 예정이다.
/최종동 서울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