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물에서 놀기를 무척 좋아했다. 특히 하천(폭이 조금 넓은 개울)의 맑은 물에서 은어, 붕어 등을 잡으며 깨 벗고 놀던 일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그곳에는 각종 나무와 수생식물, 갈대 등이 숲을 이뤄 온갖 동식물과 곤충들에게 좋은 생육 및 서식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태초의 자연환경 그대로였다. 한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천 주변도 왕버들 등으로 형성된 숲이 장관을 이뤘다고 하니 성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천생태 복원…방향 크게 빗나가
인간은 바로 이런 환경에서 기(氣)를 충전하고 활력을 얻으며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입에 올리는 ‘친환경’, ‘환경친화적’이란 용어의 의미는 이 같이 순수한 자연생태환경을 닮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과연 우리 주변에 이런 순수한 자연생태환경이 있기는 한가. 인적이 드문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 같은 환경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에 의해 환경은 무자비하게 파괴됐다.
예로 하천을 살펴보자. 둑 가까이까지 농지를 확대하고 도로를 개설해 하천 주변은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다. 제방은 콘크리트 더미로 도배를 했고, 각종 오폐수가 유입돼 강바닥은 썩어가고 있다. 실개천(도랑)의 경우는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사태가 이 지경이니 동물과 곤충들이 서식할 수 없고, 수생식물이 자랄 수 없어 생태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가에 나가도 옛날과 달리 볼 것도, 쉴 곳도 없으니 정서적 황량함은 말할 것도 없을 지경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환경다운 환경이 없는데 무슨 환경을 닮겠다고 ‘친환경’을 화두로 올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천생태를 복원하겠다며 지금까지 많은 예산을 들여 하는 공사가 고작 보 만들기였고, 해마다 수십만 미의 치어나 다슬기 등을 방류하고 있으나 그 많은 다슬기와 치어는 간 곳이 없다. 생태환경이 열악하니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봄이면 우기철 물 흐름을 방해한다며 하천 바닥을 굴삭기로 박박 긁어대는 몰지각도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대가천을 친환경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로가 포함된 보 만들기와 제방 쌓기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의 우를 반복할까 걱정이 앞선다.
‘로하스(LOHAS)시대’…녹색환경이 경쟁력
산업화가 고도화된 서구 선진국들의 환경복원 운동은 합리적이고 기발하며 매우 끈질기다. 독일의 한 농촌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하천복원 사례는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개발논리에 밀려 우리와 흡사한 형상을 보이던 하천 주변의 농지(최고 200m까지)를 사들여 나무를 심고 수생식물들을 키운 결과 수달 등 동물들이 찾아오고 곤충이 서식하는 생태계를 완전 복원시켰다고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무려 25년이 걸렸다고 하니 허물어지기는 쉬워도 복원하기는 어려운 것이 환경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를 보기 위해 하루 2∼3만 명의 도시민들이 모여들자 공원과 체험장, 편의시설 등을 만들고 짭짤한 관광수입까지 올리게 돼 주민들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라고 한다. 그들의 혜안과 끈질긴 노력이 부럽기만 하다.
현대를 ‘로하스(LOHAS)시대’라고 한다. 개인 건강과 복지를 꿈꾸는 현대인의 인생관을 표현하는 뜻이며, 공해에 찌든 도시 삶을 벗어나 환경친화적인 웰빙을 바라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데 따른 현상이다. 그들은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 숲을 그리워한다. 삶이 윤택해지고 문화수준이 향상 될수록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는 인구 300만 명의 도심을 품고 있다. 그들의 로하스를 자극할 수 있는 유용한 방안을 찾아내면 후대에게 최고 가치의 자산을 물려줄 수 있다. 대가천, 이천, 백천 등을 활용해 태고의 하천 생태계를 복원하는 구상도 고려해 볼 만하다. 진행 중인 대가천 생태복원 계획의 보완도 한 방법일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낸다”고 말했다. 군세(郡勢) 작음을 탓하면서 미래 초석 놓기를 주저해서는 맨 날 후발주자 신세 면키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