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란 말의 구성
우리말의 ‘어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나타내는 말인데 이 말의 구성을 보면 재미있게도 세 음절이 그 두 낱말의 공평한 합작인 듯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어’는 ‘어머니’의 첫 자이고 ‘버’는 ‘아버지’의 둘째 자이고, ‘이’자는 두 낱말의 셋째 음절 ‘지’와 ‘니’자의 공통의 모음을 딴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의 무게는 아버지에게 실린 것이 아니라 첫 자가 ‘어머니’의 ‘어’자에 있으므로 어머니에게 실려 있다.
그러면 아버지를 기준으로 하는 ‘아머이’의 가능성은 없는가? 결코 없을 것이다. 정철의 사모곡(思母曲)에서 보는 것처럼 아버지에게보다 어머니에게 더 사랑과 정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말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을 고자(孤子, 고독한 아들)라 하고, 어머니를 잃은 아들을 애자(哀子, 슬픈 아들)라 부르는 것은 자식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것을 잘 나타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한 때 ‘어머니날’이라 하여 지키던 날을 ‘어버이날’로 바꾼 것은 아버지를 소외시킬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어머님’
인간간의 대화에서 사랑 및 정과 존대와는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비례하는 것이다. 경어를 쓰는 관계보다 평어를 쓰는 관계가 더 가까운 친분인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사실은 경상도 일부 지방에서 할아버지 아버지에게는 존댓말을 쓰면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는 평어를 쓰는 데서 볼 수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여자들에게 있어서 친정어머니에게는 ‘엄마’ 또는 ‘어머니’라고 부르고 ‘어머님’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데 대해, 시어머니에게는 꼭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존대어를 쓰는 시어머니보다 평어를 쓰는 친어머니가 더 가까운 사랑의 관계인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즉 친밀한 관계일수록 평어를 쓰게 되는 것이 언어의 생리이다. 따라서 어떤 지방에서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해 존댓말을 쓰지 않는 것은 결코 할머니나 어머니를 존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보다 더 친밀하고 다정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엄매 밥 먹어라” “할매 밥 먹었나?”하는 어떤 지방 말을 듣고 서울 사람들은 놀라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