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 순서 1. 겨레의 넋이 된 청사 서석준 2. 아웅산 테러, 그 날의 기억 3. 이유 있는 추모의 물결 4. 타 지자체의 추모사업 들여다보기 5. 추모 사업의 새 바람 일으킬까 미얀마 암살 폭파 사건은 북한이 1983년 10월 9일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테러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 폭탄이 터져 전 대통령은 화를 면했지만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17명의 공식·비공식 수행원이 순국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에 제2회에서는 1983년 10월 9일 발생한 아웅산 테러 사건을 되돌아봄으로써 안타까운 그날의 기억에 대해 회고하고자 한다. 이재은 미얀마 폭파 사건 당시 MBC 카메라 기자는 "우리는 대통령이 오는 그 순간을 촬영하기 위해 바로 현장에 돌아서는 순간, 집 전체가 폭파되는 등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고 했으며, 노신영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은 "전혀 몰랐다. 아무리 못된 사람들이라고 해도 남의 성지에 들어가 폭파하리라 누가 생각했겠나"라고 회고하며 재임 중 대북 정보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아웅산 테러를 꼽았다. 1983년 10월 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공식 수행원 22명과 비공식 수행원 등을 데리고 동남아 5개국의 공식 순방길을 출발했다. 미얀마는 당시 전투환 전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순방길의 첫 방문지였으며, 이 날은 미얀마의 독립운동가 아웅산의 묘소에서 참배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10월 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행사에 참가차 이동 중이었고, 도착 전이었던 전두환 대통령은 목숨을 구했지만 사건이 일어난 오전 10시 28분에는 애국가 예행연습 중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수행 공무원들과 경호원, 기자 등이 미리 대기해 있다가 순직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서석준, 외무부장관 이범석, 상공부장관 김동휘, 동자부장관 서상철, 대통령 비서실장 함병춘,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심상우,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김재익, 재무부차관 이기욱, 주 버마대사 이계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하동선, 대통령 주치의 민병석, 농수산부차관 강인희, 과학기술처차관 김용한, 청와대 공보비서관 이재관 등의 공식 수행원과 동아일보 기자 이중현, 경호원 한경희, 정태진 등이 희생됐다. 부상자는 합참의장 이기백, 공보비서관 최재욱, 외무부 의전국장 최상덕, 한국일보 기자 윤국병, 중앙일보 기자 송진혁, 동아일보 기자 최규철, 연합통신 기자 김기성, 코리아헤럴드 기자 김기석, 연합통신 사진부장 최금영, 문화공보부 직원 임삼택·김상영, 경호원 김상태 등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건 발생 후 나머지 일정을 중단하고 이튿날 새벽 급히 귀국했고 우리나라 정부는 한국정부조사단을 현지에 파견, 미얀마측과 합동 조사를 벌였다. 또 귀국 즉시 열린 비상국무회의에서는 비상경계태세를 결정했으며, 10월 13일에는 희생된 17위에 대한 국민장 거행 후 연일 벌어진 북한만행규탄대회를 고비로 대북보복론까지 대두됐다. 그러나 10월 20일 대통령 특별담화를 통한 대북한 경고와 더불어 자제론이 천명됨으로써 고조됐던 남북한간의 위기국면은 진정됐다. 이후 미얀마 당국은 이 사건이 북한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진모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 등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수사결과를 밝혔다. 이들은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 담당 참사관 전창위의 집에 은거한 후,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미얀마에 도착하기 하루 전 새벽에 아웅산 묘소로 잠입해 지붕에 2개의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미얀마 정부는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관 요원들에 대해 출국 명령을 내렸다. 당시 미얀마는 사회주의 성향으로 우리나라보다 북한과 가까운 국가였으나 자국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묘역에서 폭탄테러를 일으킨 것에 대해 격노해, 북한과의 국교를 즉시 단절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이 암살사건과 무관함을 강변했으나, 미얀마 검찰당국에 체포된 범인들이 죄상을 밝힘으로써 북한에서 전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살해하기 위해 인민군 장교들로 구성된 암살단을 애국동건호에 탑승, 밀파했다는 사건전모가 공개됐다. 그 뒤 12월 9일 랭군지구 인민법원 제8특별재판부에서 두 테러범에 대해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은 국제여론의 비난 속에 제3세계의 지지기반이 동요됐으며, 우리나라는 남남협력을 내세운 제3세계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진척을 보게 됐다. 한편 이 사건으로 코스타리카·코모로·서사모아 등 3개국이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했으며, 미국·일본 등 세계 69개국이 대 북한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국가 주도의 테러로 이후 KAL기 폭파 등과 함께 국제 사회에서 북한을 테러국가로 낙인찍게 만든 시발점이 됐다. 취재1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최종편집:2025-08-20 오후 0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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