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 순서
1.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를 찾아서
2.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성주이씨
3.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벽진이씨
4.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성산성주배씨
5.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성산이씨
6.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성주도씨
7.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성산여씨
8. 또 하나의 성주 성씨, 가락김씨
성주군에는 현재 성주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성씨들이 집성촌 마을을 형성하는 등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행정구역상 지금의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모두 28성관(姓貫)에 달하며, 성주이씨, 벽진이씨, 성산성주배씨, 성산이씨, 성주도씨, 성산여씨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제3회에서는 성주를 본관으로 둔 성씨 중 `벽진이씨`에 대해 다뤄본다. 벽진이씨의 기원 및 유래, 시조, 대표 인물 및 후손 등 각 문중 제반 사항 전반에 대해 심도 있게 파악해본다. 또한 완정고택, 쌍충사적비 등 벽진이씨 관련 유적을 방문해 벽진이씨의 발자취에 대해 되돌아본다. 나아가 각 문중 및 지역민들에게 충효사상 및 주인정신 등을 함양시키고자 한다.【편집자 주】
벽진이씨는 1157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키면서 문화를 가꿔 온 성주의 토착 성씨다.
시조는 고려의 개국원훈으로 삼중대광의 벼슬과 벽진(성주의 옛 이름)을 식읍으로 하사받고 벽진장군에 봉해진 이총언이다.
그는 858년(신라 헌안왕 2년)에 태어나 신라의 관료로서 벽진 태수에 임명됐다. 그러나 신라 말기로 접어들면서 왕권이 쇠약해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게 되자 대부분의 지방 정부는 무너지게 됐다. 이에 농민들의 반란은 이어지고 도적떼가 창궐하는 등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총언은 중앙정부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군비를 조달해 군사를 양성하고 도적이나 외부세력으로부터 군민들을 보호하는 등 주위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았다. 이와 같이 벽진군을 다스리며 통치 기반을 구축함에 따라 성주인 호족으로 거듭나게 됐는다.
이어 후삼국으로 접어들면서 고려와 후백제가 통일을 주도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다툴 때, 후백제의 견훤은 고려의 태조 왕건을 정복하기 위해 북진하는 과정에서 그 길목인 벽진군을 돌파하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여러 차례 크게 패해 군사적으로 많은 손실을 입고 그 세력이 위축됐다.
반면 태조 왕건에게는 벽진군이 큰 방패막이 되면서 자연적으로 고려와 벽진군은 혈맹관계로 거듭났다.
이후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고, 벽진장군 이총언에게 개국 원훈의 예를 다하며 벽진군과 함께 이웃 고을의 정호(신분계층) 229호를 더해 식읍을 하사했고, 여기에 곡식 2천200석과 소금 1천785석의 은전도 함께 내렸다. 이런 은전은 고려 왕조의 건국과정에 유례가 없을 만큼 큰 것이며, 더욱이 태조 왕건은 이총언에게 신하의 예로 대하지 않고 `자손에 이르도록 이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는 서찰을 보내 금석같은 신의를 보였다고 고려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총언에게는 달행과 영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벽진이씨 족보에는 장자인 달행의 후손들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관계로 이영이 벽진장군의 대통을 이었고, 대제학의 벼슬에 이르게 됐다.
이후 고종 때 명경과에 장원급제한 이극송은 판삼사의 벼슬에 이르렀으며, `대나무같이 곧은 성품에 가을 물 같이 맑은 정신을 가졌다`고 해 고종이 빙옥재라는 호를 내렸다. 이극성의 후손들은 초전면 어은동에 일가 마을을 이루고 있다.
또 충열왕 때 경상도 안찰사를 거쳐 충숙왕 때 원나라 정사로 사신을 다녀온 이견간은 상주 객관에서 읊은 산화시의 구절이 절묘해 산화선생이란 별호를 얻었는데, 그 시는 김종직이 편찬한 청구풍아와 서거정의 동문선에 실려 있을 정도다.
이 외에도 고려 왕조에서 문한으로 빛난 인물이 많은데, 금자광록대부 이실, 은청광록대부 이은, 태자첨사 이당규,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 이당개, 은청광록대부 이옹, 수문전대제학 이대 등이 있다. 또 고려 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인 이사지와 의절신인 이존인의 절의도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문과에 급제해 가문을 빛낸 인물이 많다. 생육신 이맹전, 청백리 이약동과 이철균, 정국공신 이식, 호당 이장곤, 봉조하 이세근 등이 가문의 표상으로 내세울 만한 인물들이고, 경상감사 이상일, 성주목사 이용화는 성주와 인연이 깊다.
현재 성주에서 벽진이씨의 자취를 살펴보면, 먼저 벽진면 수촌리에 있는 경수당을 말할 수 있다. 경수당에는 시조공의 위패를 봉안한 비현사와 별도로 윗대 조상 11위의 위패를 봉안한 세덕사가 있으며, 벽진장군 유허비·사적비 등을 고루 갖춰 조성해 놓은 벽진이씨의 중심 종당이다.
다음으로 초전면 월곡리에 있는 문곡서원은 벽진이씨 백파인 산화선생파의 종당으로, 산화선생을 주벽에 모시고 그 아들과 손자를 배향하고 있다.
또한 월곡리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좌부승지를 지낸 완석정 이언영의 종가인 완석정 종택이 있다. 종택은 현재 경북 문화재 163호로 지정돼 있다.
월곡리 동리 입구에는 산화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이 역시 산화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으로, 산화선생의 유허비와 정헌공의 신도비 등이 함께 있다.
또 초전면 어산동에는 문정공 이극송을 봉향하는 재사인 옥수당이 있다.
한편 2000년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벽진이씨 인구는 9만1천907명으로 나타났으며, 성주뿐 아니라 밀양·창녕·의령·고성·합천·영천·김천·칠곡·구미 등 주로 영남 일원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서울시와 경기도 고양·김포·동두천·양평·가평과 강원도 화천·횡성, 전북 남원에도 일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이재수 벽진이씨 대종회 관계자는 "현재 대종회에서는 경수당과 성주군·벽진면·성주문화원 등이 연계한 경수당 문화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경수당과 음악회, 서예대전 등의 문화사업을 접목시킬 예정"이라며 "앞으로 대종회 홈페이지를 개편해 전 종인들과의 소통의 장으로 활성화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중의 종당인 경수당이 지난 2013년 약 6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조공 묘소 성역화 사업을 완료했다. 이어 현재 마무리 공사 중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취재1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