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 순서 1.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를 찾아서 2.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성주이씨 3.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벽진이씨 4.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성산성주배씨 5.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성산이씨 6.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성주도씨 7.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경산이씨 8. 성주에 뿌리내린 성씨-성산여씨 9. 또 하나의 성주 성씨, 가락김씨 성주군에는 현재 성주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성씨들이 집성촌 마을을 형성하는 등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행정구역상 지금의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모두 28성관(姓貫)에 달하며, 성주이씨, 벽진이씨, 성산성주배씨, 성산이씨, 성주도씨, 경산이씨, 성산여씨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제7회에서는 `경산이씨`에 대해 다뤄본다. 경산이씨의 기원 및 유래, 시조, 대표 인물 및 후손 등 각 문중 제반 사항 전반에 대해 심도 있게 파악해본다. 또한 백인당, 덕암서원 등 경산이씨 관련 유적을 방문해 경산이씨의 발자취에 대해 되돌아본다. 나아가 각 문중 및 지역민들에게 충효사상 및 주인정신 등을 함양시키고자 한다. 시조는 악거부정을 지낸 이덕부로, 조상 대대로 지금의 경주시(계림)에서 살아오다가 고려 중엽에 경산부 본아리(本牙里, 현재의 성주군)로 이거, 새로이 관향을 경산(京山)으로 사용했다. 구보 서문에 의하면 신라 신성왕의 외예(外裔), 신라 신덕왕의 외예(外裔) 양설(兩說)이 있으나 정확한 고증은 없다. 그리고 신라 육부 중의 한 집이었다는 말이 있다. 또한 시조공 이전의 세계가 병화로 모두 소실돼 부정공(副正公)을 시조로 삼았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 중엽에는 성산이씨, 성주이씨로 본관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신사보(1821), 계축보(1913)에는 성주이씨로 족보를 간행했고, 기축보(1949)부터는 경산이씨로 족보를 간행했다. 이는 성주를 관향으로 둔 다섯 이씨가 동일한 본관을 사용, 혼동을 방지하기 위함이였다. 성주에 와서 6대를 살았는데 어떻게 지냈는지 행장 유적이 전무하다. 다만 용암면 대봉리 조곡산에 6대의 묘소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여러 차례 병화를 겪어 정확한 소재를 잃어 버렸다. 1974년 11월 6세의 제단비를 설립, 매년 음력 10월 초3일에 시사를 지내고 있다. 고려시대 인물로는 시조공의 아들 이당유가 소보 벼슬을 지냈으며, 3세 이교년는 위위(衛尉), 5세 이조는 비서성시랑, 이호는 청송부원군, 7세 이미는 송안군, 이협은 판도판서를 역임했고, 8세 이번이 도호부사, 이사충이 목사, 이채가 부사를 역임했다. 또한 7세 소부윤을 지낸 이함은 고려훈국공신 광평군 이능의 사위가 돼 당시 세거지였던 경산리로부터 암포(덤개)로 이거, 성주 덤개마을은 경산이씨의 본거지이자 집성촌이 돼 700년 이상을 세거하고 있다. 경산이씨는 2세 이당유의 장남인 3세 이춘년의 후손들이 성주파(경산이씨)가 되고, 차남 3세 이교년의 손자인 5세 이호가 청송부원군에 봉해짐에 따라 금성파(청송이씨)로 갈리게 됐다. 조선시대 인물로는 9세 이흥문은 양양도호부사 이번의 아들로 문장이 뛰어났으며 제주안무사와 사헌부 대사헌을 역임했다. 10세 이엽은 건공장군 중부장을 지냈으며, 아우 이안은 단천군수를 역임했다. 경산이씨의 대표적 유현인 삼익재 이천배, 백천 이천봉, 학가재 이주 삼현은 높은 학덕으로 가문을 더욱 빛냈다. 14세 삼익재 이천배는 한강 정구의 문인으로 타고난 자질이 밝고 순수했으며 기상이 온후했고, 여헌 장현광·낙재 서사원·감호 여대로등과 도의로 교류했다. 또한 천곡서원을 중수하고 초대원장을 역임했으며, 학문과 명성이 높아 벼슬에 나아가도록 천거됐으나 도가 아니라는 겸양의 자세로 위기지학에 전념했으며, 현재 월항면 소재 덕암서원에 배향돼 있다. 14세 백천 이천봉은 한강 정구의 문인으로 선조 34년(1601) 생원시 합격해 성균관에 유학했고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 여헌 장현광이 조정에 천거해 성주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또 인조 6년(1628)에 유일 천거돼 의금부도사에 제수됐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백천정과 보동정사를 지어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고, 현재 덕암서원에 배향돼 있다. 15세 학가재 이주는 여헌 장현광 문하 십철에 드는 유현으로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여헌 장현광의 연보와 가장을 지었고, 남전향약을 따라 동규를 만들고 계도해 향촌사회 발전을 주도했으며, 사월정 이륜과 숭조돈목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백인당을 세우고 팔덕목을 제시했다. 학가정과 공암서당을 지어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현재 덕암서원에 배향돼 있다. 또한 파리장서에 서명해 독립청원을 한 이현창, 이계준, 이계원, 이만성의 사적비가 있다. 유적으로는 백인당(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87호), 백인당 향나무(경북 기념물 제171호), 원모재, 덕암서원(경북 문화재 자료 제286호) 등 20여곳의 재사·누정이 산재해 있다. 경산이씨는 △부장공파 △통덕랑공파 △군수공파 △사직공파 △생원공파 △홍복재파 △금성파(청송이씨)로 분파됐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경산이씨는 총 2천551가구 7천97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종인들은 현재 서울·부산·대구시, 성주·고령·청도군 등에 분포해 있다. 현대 인물로는 평화통일 정책자문회의 수석부의장(1981)을 지낸 이정식, 경상북도지사 3선을 지낸 이의근, 1958년 일본 동경 아시안게임(마라톤) 우승 이창훈(손기정 서랑) 등이 있다. 이갑도 경산이씨 대종회장은 "다음달 30일에는 `성주의 역사인물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삼익재 이천배, 백천 이천봉 선생의 학술 세미나가 개최되는 만큼, 많은 종인들과 유림 제현들이 참여해 선조들의 찬연한 정신문화와 얼이 계승 발전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덕암서원을 종인뿐 아니라 타 지역·문중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강학지소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덕암서원 주변 검암산의 수려한 경치를 활용한 덕암서원 둘레길 조성과 덕암서원 스테이-백인당(대종재사)·백인당 향나무-선석사와 세종대왕자태실-한개마을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관광 자원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취재1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최종편집:2025-04-30 오후 04: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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