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설화의 한 형태이다. 전설은 민담과 달리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증거물이 남아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전설은 지역의 장소나 지역에서 발생한 역사상 사건을 소재로 오랜 시간에 걸쳐 전해 내려온 고유문화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2회에서는 관내 지역 이름의 유래를 전설을 통해 살펴보고 전설을 소개하고 공유함으로써 지역민 및 관광객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편집자주】 게재 순서 1회 가야산신의 소원 2회 억울하게 죽은말 외 3회 태봉에 얽힌 이야기 외 4회 송계 권응인 선생에 얽힌 전설 외 5회 성주 문화 콘텐츠 사업의 현재와 미래 예로부터 전설에는 상징적인 동물이 많이 등장한다. 가령 용이나 백호, 봉황, 이무기 등이 전설에 자주 등장한다. 성주군도 비슷하다. 성주군의 전설을 살펴보면 말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전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 의마의 비에 얽힌 전설   초전면 대장동에 말무덤이 있다. 초전면 소재지를 대매 혹은 대마(大馬)라고 부르게 된 까닭을 설명해주는 전설이 있다.   200여년 전 답계(지금의 성주읍 학산리) 역졸이었던 김계백(金戒白)은 볼일이 있어 역마를 타고 부상역에 갔다가 일을 마치고 술에 취해 밤에 돌아오는 도중 길이 험한 부상고개에서 갑자기 큰 호랑이를 만났다.   김계백은 술에 만취돼 제몸조차 가누지 못할 형편이었다. 역마는 주인을 지키기 위해 호랑이와 맞서 싸우며 마을 가까이로 주인을 데리고 갔다.   마을 가까운 주막 근처에 도착했을 즈음에 김계백은 술이 깨 정신이 돌아와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이 소리를 듣고 마을 주민이 나왔는데 김계백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했지만 말과 호랑이는 피투성이인 상태로 죽어있었다.   김계백은 자신을 구해준 말의 은혜를 잊지 못해 주막집 앞 돌로 비를 세워 말의 은덕을 기렸는데 이것이 `의마비`이며 말의 무덤을 `의마의 무덤`이라 했다.   또한 말이 넘어져 죽은 주막집을 대마점(大馬店) 혹은 대마라 부르게 됐는데 이 주막이 있는 곳이 마을이 돼 지금의 초전면 소재지이다.   ■ 억울하게 죽은 말   예로부터 가야산은 성주의 진산으로 성주를 지키는 산이다. 가야산의 웅장한 모습을 닮은 훌륭한 인물이 성주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을 성주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가야산 동편에 백운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는 `법수사(法水寺)`라는 큰 절이 있다. 법수사의 절터에는 지금도 높은 달탑이 그 시절을 자랑하듯 서있다.   백운동의 가릿대 골짜기가 있는 곳에는 자그마한 절이 있다. 그 절의 정확한 명칭은 알 수 없고 `가릿대절`이라고 불린다.   이 절에는 젊은 스님이 두 명 있었는데 힘이 세기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상한 힘과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났다.   이 근처에 박이현(朴而絢)이라는 또 다른 젊은이가 있었는데 글공부도 잘했지만 장군이 되고 싶어서 이 가릿대절을 찾아갔다. 박이현은 이 절에서 글공부를 하면서 이 두 젊은 스님과 힘자랑도 하고 무술도 겨뤄 봤으나 도저히 그 중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박이현이 잠에서 깨어보니 두 스님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밤중에 어딜 가나 싶어 뒤를 밟았다. 이상하게도 두 스님은 산골짜기로 가고 있었다. 점점 이상하게 여긴 그는 계속해서 그들의 뒤를 밟았다.   젊은 스님들은 큰 바위 밑에 가서 그 바위를 밀치더니 거기서 한 방울씩 흐르는 물을 마시고 있었다. 박이현은 저것이 장군수로구나 여겼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스님들은 거기에 가서 장군수를 마셨다.   박이현은 `나도 저 물을 마셔야지`라고 생각하고 혼자 그 바위 밑에 가서 바위를 밀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그 바위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요모조모 생각하다가 억새풀 대궁을 꺾어서 바위 밑으로 넣어 물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박이현은 매일 이러한 방법으로 장군수 마시기를 석 달이 되자 혼자의 힘으로도 그 바위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와중에서도 글공부와 무술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박이현이 이 가릿대절에서 공부한지 1년이 되는 날 이 스님들과 재주다툼을 했더니 두 스님이 함께 덤벼도 박이현을 이길 수가 없었다.   한편 박이현은 절에 들어갈 때 말을 데리고 갔었는데, 그 말의 훈련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박이현은 말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활을 쏠 터이니 저쪽 산에 화살이 다다르기 전에 그 화살을 물고 오겠느냐?"라는 물음에 말도 말귀를 알아듣고 귀를 쫑긋했다.   화살을 빼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자 말도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박이현은 화살과 말이 보이지 않자 말을 찾았으나 말은 화살을 물고 있지 않았다. 박이현은 화살도 물지 못했으니 말이 있으나 마나라면서 말의 목을 쳤다. 말의 목을 치자, 목에서 화살이 튀어나왔다.   공중을 나는 화살을 말이 삼켜버렸는데 박이현이 그것을 모르고 말의 목을 베었던 것이다. 그 좋은 말을 억울하게 죽인 박이현은 며칠을 안타까워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어느 날 마을 앞 냇가에 굴레 벗은 큰 말이 나타났는데 아무리 그 말을 잡으려고 해도 아무도 잡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말을 들은 박이현은 그 냇가로 가보니 과연 듣던 대로 좋은 말이었다. 박이현이 가까이 가자 말은 주인을 만난 듯 순순히 잡혀서 집으로 따라왔다.   이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왜병들이 성주 고을을 덮쳤다. 박이현은 말을 몰고 왜적을 막으러 나섰으며 이웃마을의 젊은이들도 박이현을 따랐다. 치열한 전투 끝에 박이현은 대가천에서 전사했다. 박이현이 싸움에 진 것은 그가 탄 말이 수말이라 왜장이 타고 있는 암말을 보고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달려갔기 때문에 전사한 것이라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처음 죽은 말이 원한을 품고 수말로 다시 태어나 박이현이 원통하게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취재 2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종편집:2024-05-17 오후 04: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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