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왕자가 태어나면 태를 씻어 태항에 담아 봉안했다. 태아에게 생명을 부여한 태를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겨 풍수지리가 뛰어난 곳에 보관한 것이다. 이런 장태 문화는 세계에서 유일한 문화이다.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는 국가 사적 제444호인 세종대왕자태실이 있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전국에 산재한 태실지 가운데 최대 규모로 유일한 왕자태실의 군집지이며 성주를 대표하는 문화재이다.  제3회에서는 태봉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전설을 관광지와 접목한 문화 콘텐츠로 개발할 가능성과 방향을 모색해본다.【편집자주】 게제순서 1회 가야산신의 소원 2회 억울하게 죽은말 외 3회 태봉에 얽힌 이야기 외 4회 송계 권응인 선생에 얽힌 전설 외 5회 성주 문화 콘텐츠 사업의 현재와 미래   성주군은 세종대왕자태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군은 지난 1월 8일 `한국의 태실과 세계의 장태문화`를 주제로 제3차 학술대회를 서울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했다.  이 학술대회는 세종대왕자태실의 세계유산 등재 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됐으며 지난 2014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이날 세종대왕자태실에 관심을 가진 성주 군민 및 출양인사, 각종 문화단체, 학계 연구자 등 200여명이 참석해 태실관계 전문가들의 연구 성과를 들으며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태봉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이 태실은 수양대군을 비롯한 세종의 적서 18왕자와 왕손 단종의 태를 안장한 곳으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이다.  세종 왕자의 태를 묻은 태봉에 전해내려 오는 전설을 알아본다. ■ 태봉에 얽힌 이야기  성주군 월항면에 소재한 선석사(禪石寺) 맞은 편 봉우리가 태봉이다. 태봉은 세종 20년부터 왕자인 수양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평원대군, 계양군, 의창군, 밀성군, 수춘군 등의 태를 돌함지에 넣어 묻고 앞에 비석을 옮겨 묻은 봉우리이다.  이 태봉에는 태봉으로 정하기 전 한 무덤이 있었다. 이 무덤은 농서군공 이장경의 무덤이었다.  이장경의 장례를 치르는 날 낮에 한 노승이 오더니 "명당이구나"고 말했다. 이어 노승은 산꼭대기의 예장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묘를 썼으면... 저기는 더 없는 길지인데"라며 "그 자리에 묘를 쓰면 자손들이 잘될 것이다. 그러나 누각을 짓는 등 무덤을 화려하게 꾸며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내뱉고 노승은 사라졌다. 그때 마침 장례를 치러야 하는 상주는 그 나무를 베고 노승이 명당이라고 말한 곳에 무덤을 앉히기로 했다.  도끼로 노승이 가리킨 나무를 베니, 그 나무에서 큰 벌 한 마리가 날아와 스님이 간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후 스님을 찾아가 보니 스님은 큰 벌에 머리를 쏘여 이미 절 아래에서 죽어 있었다.  이씨 자손들은 노승이 일러준 그 곳에 묘를 썼다. 무덤을 앉힌 후 자손이 번창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자 그들은 노승의 경고를 잊은 채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고 묘각을 세웠다.  그 뒤 성주의 태봉이 명당자리라고 소문이 서울까지 알려졌다. 그때 마침 왕실에서는 태를 앉힐 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선 서울의 지관이 내려와 산에 앉아 지형을 확인했다. 잠시 쉬려고 묘각에 올라 갔는데 그는 크게 놀라며 "명장자리가 과연 여기 있었구나"라며 무릎을 쳤다. 몰려있던 안개가 환히 걷히고 산봉우리가 확 터졌다.  지관이 간 뒤 왕가의 태를 태봉에 묻히게 돼 이장경의 묘는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장경의 자손들은 묘를 쓰고 난 뒤 농서공의 아들 5형제는 모두 큰 벼슬을 했고 그 자손에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왔지만 묘를 옮긴 후부터는 이씨 집안이 전과 같이 번창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이런 명당을 함부로 입 밖에 낸 노승을 벌하기 위해 신령이 벌을 시켜서 노승을 쏘아 죽였다고 한다.  전설에서와 같이 태실이 명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왕실에서는 왕손의 무병장수와 순조로운 왕업 계승 등을 기원하며 전국의 길지를 찾아 태를 봉안했다. 이렇게 조성된 것이기에 태실은 당연히 명당일 수밖에 없다.  풍수 전문가들은 "세종대왕자태실은 산 사람의 거주지를 뜻하는 양택의 기를 받는 곳"이라며 "네모난 기단석은 땅을, 연꽃을 새긴 둥근 뚜껑 모양의 돌은 하늘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중동석은 인간을 상징한다. 이는 곧 천·지·인이 한 곳에 있다는 조선시대 우주관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성주군은 세종대왕자태실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고 우리나라 문화재로 보존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성주문화원 관계자는 "태실을 조성하는 문화유산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있으며 전국에 산재한 200여곳의 태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인 성주군의 세종대왕자태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한다"며 "우리고유의 생명존중 문화를 계승하고 널리 알려 군의 주요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성주를 생명문화의 성지로서 위상을 재정립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이 주요한 문화자산인 세종대왕자태실을 문화재로 단순히 보고 느끼는 것보다 태봉에 얽힌 전설을 문화콘텐츠로 개발해 함께 접목한다면 기존의 소극적인 보는 관광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취재 2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종편집:2024-05-17 오후 04: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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