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회 | 백농 최규동은 누구인가 ■ 2회 | 성장기의 백농 선생과 교육이념 □ 3회 | 백농에 대한 일화 및 위대한 발자취 □ 4회 | 백농 선생을 기리기 위한 지자체의 움직임 □ 5회 | 딸에게 듣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최규동 선생의 호는 백농, 본관은 영천, 최무선의 후손 영한의 장남으로 1882년(고종 19년) 가천면 창천동에서 태어나 1950년 6·25전쟁 때 북한에 납치돼 평양감옥에서 그해 10월 향년 69세로 옥사했다. 최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현창사업을 통해 위대한 인물의 업적을 기리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본지는 일제 강점기에 헌신적 교육자이자 민족계몽의 선구자로 평생을 청빈하게 육영에 전념하며 독립을 위해 민족교육의 선두에 섰던 백농 선생에 대한 심층취재를 통해 청소년을 비롯한 지역주민에게 성주인의 자부심과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고, 애향심 고취의 계기를 마련코자 한다.【편집자 주】 "일제 말년에 절의를 굽히고 추하게 행동한 교육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백농 선생은 8·15를 감격의 눈물로 맞이할 수 있었던 명사 가운데 한 분이었다"(民聲·1949), "조선의 페스탈로치"(동아일보·1940) 등 백농은 당시 언론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백농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청년들을 교육시키겠다는 목표의식으로 조국과 민족의 발전을 이끄는 것은 `교육의 힘`이며 인재를 양성하는 것만이 나라를 찾는 첩경이라는 신념으로 평양의 기명학교와 대성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앞장서왔다.   그의 교육이념은 중동학교에서 꽃피워진다. 1906년에 설립된 중등학교는 당시 보성학교 등과 함께 민족사학으로 이름을 알린 학교이다.   평양에서 서울로 내려와 야학인 중동학교 교사 시절인 1915년에 조선총독부의 교사 부지 몰수와 재정 부족으로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게 되자 중동학교를 인수해 초대교장(1915- 1950)으로 인재양성에 전력했다.   중동 정신은 백농의 교육이념에 따라 `신의를 소중히 여기며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하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이것이 바로 義(의)가 된다.   암울했던 시대에 일본인의 손이 아닌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자제를 교육시키겠다`는 일념으로 평소 앓고 있던 천식의 고통 속에서도 일주일에 58시간이나 수업을 했다고 전해진다. 매일 새벽마다 폐경련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교단에서 쓰러질 때까지가 나의 생명이다"라며 교육에 온 힘을 쏟았다.   특히, 수업 중 우리 민족의 아픔과 장래 등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민족정기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한 백농의 교육이념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일본의 회유와 협박에도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채 버텼으며 조선어를 금지하는 탄압 속에서도 우리말 수업을 고수했다. 조회 때마다 분명한 우리말로 훈시해 학생들을 감동시키며 청렴한 교육자로서의 삶을 실천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중동학교 시절 일본인 교사는 3명이었다. 모두 총독부 학무국 감시위원이며 그들의 임무는 조선학생을 탄압하고 조선교사를 감시하는 것이었지만 백농의 인격에 오히려 동화돼 중동학생들은 탄압을 받지 않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중동학교 제자로는 시인 김광섭, 소설가 계용묵,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등이 있으며, 2013년부터 `백농 교육상`을 제정해 사표가 되는 현직 교사에게 수여하고 있다. 현재 강남구에 위치한 중동고는 강남 8학군 내에서도 학생들의 학력 및 대학진학 실적이 높기로 유명한 명문사립고등학교로 2009년에 자율형사립고로 선정됐다. 중동고등학교는 1994년 삼성그룹이 인수했다. 삼성그룹의 설립자인 이병철 회장은 1932년 제25회 졸업생이다.   중동고에 위치한 백농의 동상은 1966년 5월 10일 개교 60주년 기념식 때에 종로수 수송동에 세웠지만 학교가 1983년 강남으로 이전됨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왔다.   최씨 종친회 관계자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어렵고 암울했던 시기에 우리나라 교육의 백년대계와 민족정신 고취를 몸소 실천한 민족지도자가 우리 성주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많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며 "후대가 그 숭고한 뜻을 기리며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한 미래 인재 양성에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항일운동가이자 대교육자인 백농은 해방 후 이승만 박사의 추천으로 서울대 총장(1949. 1. 4~1950. 10. 5)이 되는데 이는 세계 최초로 사립학교 교장이 국립대학교 총장이 된 사건으로 기록된다. 백농을 서울대 총장으로 이승만 대통령에게 추천한 사람은 백농의 제자이며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씨였다.   참스승을 만나기 쉽지 않은 요즈음, 백농 선생의 헌신적인 삶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페스탈로치 같은 민족의 사표가 존재한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기획1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습니다.
최종편집:2025-04-30 오후 04: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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