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회 성주읍 마을지명 이야기 ■ 2회 선남면 마을지명 이야기 □ 3회 용암면 마을지명 이야기 □ 4회 수륜면 마을지명 이야기 □ 5회 가천면 마을지명 이야기 □ 6회 금수면 마을지명 이야기 □ 7회 대가면 마을지명 이야기 □ 8회 벽진면 마을지명 이야기 □ 9회 초전면 마을지명 이야기 □ 10회 월항면 마을지명 이야기 성주군과 같은 인구 4만명 이하의 소도시일수록 자연부락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자연부락이란 취락으로서 한 무리를 이루고, 사회생활의 기초단위가 되는 촌락을 뜻한다. 예를 들면 용산1리라고 부르기보다는 조지미라 부르고, 성산5리는 몰라도 새뜸이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렇듯 씨족공동체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동안 자연부락명이 상용되고 있지만, 막상 주민들은 지명에 대한 의미나 유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거나, 구전으로 이어져 고착화되면서 부정확한 지명으로 불리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이에 본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의 기원 및 유래, 지역적 특징 및 제반 사항 등 자연부락명을 중심으로 한 취재를 통해 문화성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하며 지역의 소중한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아울러 군민들에게 뿌리의 중요성과 애향심을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선남면은 성주군의 동부에 위치한 동쪽 관문지역으로 면소재지는 관화리이다. 55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뤄져 있으며, 면적은 67.94㎢, 가구수는 3천59세대, 인구는 7천194명이다. 선남면은 유서리, 관화리, 취곡리, 용신리, 신부리, 도흥리, 성원리, 선원리, 문방리, 소학리, 오도리, 도성리, 명포리, 동암리, 장학리 등 15개리로 나뉜다. 특히, 각 리의 마을들은 버들곡, 질매골, 방아실, 신기마, 띠밭 등 개성있고 재미있는 지명으로 주민들에게 더욱 익숙하게 불린다. 관화리 마을회관 관계자는 "선남면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근접하고 도로망의 확충으로 인해 도성·용신·문방공단 지역에 산업시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며 "최근에는 개별공장이 많이 들어서고 있어 난개발로 인한 교통·소음 등 거주환경이 나빠지고 있으며 토양·수질 등 자연생태 환경의 오염이 우려되고 있어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덤더리·덤섬(관화2리) 이 마을은 성주~대구로 향하는 국도30호선상의 선남면 소재지 못 미처 왼쪽 산언덕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명칭은 여러가지로 불리고 있으나 주로 덤섬, 덤더리, 대흥동으로 불리고 있다. 마을의 유래는 마을 앞에 덤섬이라고 하는 큰 바위 세 개가 있어 `덤섬`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마을 뒤 산중턱에 바위가 많이 있어 `덤더리`라 부르기도 한다. 이외에도 이태연이라는 선비가 이곳에 입향하면서 크게 일어나라는 뜻에서 `대흥(大興)`이라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떡뫼·독산(관화3리) 선남면의 소재지 마을로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곳에 김용화라는 사람이 주막을 개설해 홀로 거주하고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7년경 신작로가 개설되고 면사무소를 정화리에서 이곳으로 옮긴 후 마을이 이뤄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마을의 유래는 백천변에 동서로 뻗은 야산이 있어 이를 `떡뫼` 또는 `독산`이라 불러왔는데 마을 이름도 이 산명에서 따와 부르게 되었다. 마을 이름의 근원이 되는 독산은 1980년대 후반 객토용으로 일부가 절토돼 사라지고 남은 정상부에는 선남성당이 세워져 있다. ▣용대골(용신2리) 용대골이라는 이름은 1590년 백치원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에 입향해 `용대`라 부른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마을 아래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비리천이 있어 이곳에서 잉어가 용으로 승천했다고 해 `용대`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용대`와 윗마을 `신기`를 인용해 `용신`이라고 했다. ▣버들골(유서1리) 1680년 병자호란 당시 민휘라는 선비가 입향해 이곳에 버들이 무성하므로 호를 `유산`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유산이라 했으나,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때 `유촌`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유촌 마을이 형성되기 전에 여흥민씨와 성산배씨의 선대묘소가 있는 산에 동네이름이 없는 독가촌이 있었는데 1830년경 대동방 유곡촌(酉谷村) 닭골에 거주하던 동래정씨 6가구가 북쪽 산등을 넘어 초곡방으로 이주하며 이들이 닭골에서 왔다는 의미에서 `유촌(酉村)`이라 했다. 이후 행정구역 개편때 유(酉)를 유(柳)로 바꿔 `유촌(柳村)`이라 했고 `버들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다개(소학1리) 다개 마을은 낙동강을 접하고 있는 포구마을로 임진왜란 때 낙동강을 통해 올라온 왜적들이 주민을 괴롭히자 주민들이 한밤중에 창과 낫 등으로 왜적선을 침몰시켰는데 그 보복으로 왜적들이 행패를 부리고 집을 뒤져 술을 차 마시듯 해서 `다개`·`다포`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마을 앞에 큰 포구가 있다고 해서 `다개마을`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선남면 이장상록회 관계자는 "이 마을에는 임진왜란 전에 경주이씨, 동래정씨, 경주최씨 3성이 들어와 살아온 것으로 안다"며 "또한 성산인 이정화의 자손들과 고령에서 이곳에 이주한 동래인 정상범의 후손들도 옮겨와 살고 있다"고 말했다. ▣무릉리(선원1리) 조선초엽인 1418년경 차씨 성을 가진 상인이 이곳에 들어와 숙소를 마련하기 위해 집을 지은 것이 마을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땅의 생김새가 중국의 도잠이 지은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 즉 신선이 사는 곳과 닮았다 해서 `무릉`이라 하고 선원2리 도원리를 `도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취재1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종편집:2025-04-30 오후 04: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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