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회 성주읍 마을지명 이야기 □ 2회 선남면 마을지명 이야기 □ 3회 용암면 마을지명 이야기 □ 4회 수륜면 마을지명 이야기 □ 5회 가천면 마을지명 이야기 ■ 6회 금수면 마을지명 이야기 □ 7회 대가면 마을지명 이야기 □ 8회 벽진면 마을지명 이야기 □ 9회 초전면 마을지명 이야기 □ 10회 월항면 마을지명 이야기 성주군과 같은 인구 4만명 이하의 소도시일수록 자연부락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자연부락이란 취락으로서 한 무리를 이루고, 사회생활의 기초단위가 되는 촌락을 뜻한다. 예를 들면 용산1리라고 부르기보다는 조지미라 부르고, 성산5리는 몰라도 새뜸이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렇듯 씨족공동체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동안 자연부락명이 상용되고 있지만, 막상 주민들은 지명에 대한 의미나 유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거나, 구전으로 이어져 고착화되면서 부정확한 지명으로 불리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이에 본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의 기원 및 유래, 지역적 특징 및 제반 사항 등 자연부락명을 중심으로 한 취재를 통해 문화성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하며 지역의 소중한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아울러 군민들에게 뿌리의 중요성과 애향심을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성주군의 서부지역에 위치한 금수면은 독용산, 염속산 등의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조선시대 대학자인 한강 정구가 노래한 무흘구곡 중 3곡과 4곡(배바위, 선바위)이 소재하고 있다. 금수면은 41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뤄져 있으며, 면적은 74.74㎢, 가구수는 682세대, 인구는 1천179명이다. 금수면 이장상록회 관계자는 "금수면은 국내 최초의 수상레저파크가 조성돼 있는 성주댐 등 종합휴양 레저단지로 점차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또한 김천시 중산면의 수도산에서 발원한 대가천이 동류해 성주호로 흘러들어 이 물이 성주군 전역의 농업용수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골마·남계 산 아래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성산여씨의 집성촌이다. 마을의 유래는 경상좌수사를 지낸 어떤 사람이 약 300여년 전에 이 마을에 들어와 마을을 이뤘으며, 마을 옆에 푸른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고 해서 푸를 람(藍)자에 시내 계(溪)자를 합쳐 `남계`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덕말리·덕촌(광산2리) 조선초 계유정난때 수양대군에게 화를 입은 김종서의 일족인 김유양의 네 아들이 화를 피해 은둔할 때 현감을 지낸 김사성이 수륜면 남은리 남창 마을에 정착했으며, 순천김씨 집성촌이다. 마을의 유래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해마다 풍년이 들고 번창해 덕이 많은 마을이라고 해서 `덕촌`이라 했으며 후에 `덕말리`로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덕말리는 `덕을 숭상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해석하는 설도 있다. ▣오당(광산3리) 조선 중엽 황윤중이 이 마을에 들어온 후 오당이라는 서당을 열어 한학에 뜻이 있는 사람을 모아 학문을 연구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오당`이 됐다고 전한다. 또한 오동나무 아래에 서당이 있다고 해서 서당 이름을 `오당`이라 부른 것이 마을 이름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이 마을에는 황윤중이 임진왜란때 한양에서 이곳으로 입향한 후 그 후손들이 세거해 창원황씨의 집성촌이 됐다. 광산1리 마을회관 관계자는 "금수면 광산1리에는 1999년 3월 1일 폐교된 금수초등학교 건물을 이용해 2000년 4월에 문을 연 금수문화예술마을이 있다"며 "이곳은 미술, 연극, 풍물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예술창작 공간으로,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문화예술의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있으며, 지금은 경북문화예술지원센터로 지정돼 있다"고 말했다. ▣대내(명천1리) 대내 마을은 구한말까지 대가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3월 각 면을 통폐합할 때 금수면으로 이관된 마을이다. 마을 지명 유래는 약 300여년 전에 황성천이란 복술가가 마을을 조성했다고 전한다. 당시 마을 주변에 대나무가 무성히 잘 자라서 `죽천`이라 부르게 됐으며, 지금은 순우리말인 `대내`로 부른다. ▣웃수름재·덕산(명천2리) 약 300여년 전에 박수목이란 사람이 처음 이곳에 입향했다고 전해오며, 또 숙종조에 칠곡 약목에서 성주에 입향한 박시윤의 자손들이 이 마을에 세거하게 되면서 밀양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 유래는 이 마을에 `봉소림`이란 숲이 있었는데 그 숲의 이름이 되는 봉(鳳)은 덕이 많은 동물로 알려져서 `덕산`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로는 이 마을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골짜기 계곡 옆에 집을 지어놓고 낮에는 열심히 밭을 갈고 밤에는 부지런히 책과 씨름하며 과거공부에 열중했으나 낮에 땀 흘리며 농사일을 하다 보니 잠을 이기지 못해 밖에 나가 계곡물 소리로 잠을 깨우고 해서 마침내 과거에 합격해 금의환향했다. 훗날 집 옆의 계곡물을 바라보며 물소리로 잠을 깨울 수 있었던 것을 회상하며 `수음(水音)`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후 수음이 `수름`으로 음이 바뀌어 마을 이름이 됐다고 전해진다. ▣적산(어은1리) 마을의 유래는 정확치 않으나 산이 첩첩이 쌓여 있어 `적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옛말 이 마을에는 조선초 영의정을 지낸 이직의 고택이 있었으며 고승 학조가 이곳에 기거하면서 이직의 고택을 개축해 적산사를 세웠다고 한다. 어은1리 노인회 관계자는 "마을 입구 적산지 앞에는 수령 300여년으로 추정되는 왕버들 2그루가 있어 마을의 풍광을 더해주고 있다"며 "마을 남쪽 도로 건너편에는 할미산성의 북쪽 망루로 추정하는 고루산이 위치해 있고 그 주변에는 명천고분군이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언내(어은2리) 언내 마을에는 300여년 전 이곳에 입향한 김석벽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그를 추모하는 모암재가 마을 뒤편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금물방에 속한 마을로 `어천곡`이라 불렀으나 300여년 전 훈련원부정 김중익이 어천곡에 고기가 많이 숨어 살고 있다고 해서 `어은(漁隱)`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웃후리실·상후 후리실이란 명칭은 조선 인조때 이수근이란 유생이 길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마을에 들어가 점심 대접을 받고 난 후 인심이 후하다고 소문이 나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또 면소재지인 광대원과 평촌의 뒤편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후리실`이라 부른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후리실 마을회관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도로변에 살던 노부부가 토속음식인 메밀묵과 두부를 만들어 팔던 것이 유명세를 타면서 TV에도 방영된 적이 있다"며 "지금은 여기저기 묵집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이 꼭 한 번씩 들리는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말했다. ▣넉바우·광암(무학1리) 넉바우 마을은 성주호의 수역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무학리의 초입에 해당된다. 마을의 유래는 마을 앞 냇가에 크고 넓은 바위가 하나 있어 여름이면 마을의 남녀노소가 여기에서 더위를 식히며 휴식하던 장소로, 이곳을 넓은 바위란 뜻의 `넉바우`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배바우·선암 넉바우 마을에서 서북쪽 위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다. 마을의 유래는 대가천이 곡류하는 곳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 모양이 돛단배와 같다고 해서 `배바위(선암, 船巖)`라 부르게 됐으며, 마을 이름도 이 바위의 이름을 따 방언인 `배바우`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 바위는 한강 정구 선생이 대가천을 노래한 무흘구곡 중 제3곡 무학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취재1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습니다.
최종편집:2024-05-17 오후 04: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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