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회 성주읍 마을지명 이야기 □ 2회 선남면 마을지명 이야기 □ 3회 용암면 마을지명 이야기 □ 4회 수륜면 마을지명 이야기 □ 5회 가천면 마을지명 이야기 □ 6회 금수면 마을지명 이야기 □ 7회 대가면 마을지명 이야기 ■ 8회 벽진면 마을지명 이야기 □ 9회 초전면 마을지명 이야기 □ 10회 월항면 마을지명 이야기 성주군과 같은 인구 4만명 이하의 소도시일수록 자연부락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자연부락이란 취락으로서 한 무리를 이루고, 사회생활의 기초단위가 되는 촌락을 뜻한다. 예를 들면 용산1리라고 부르기보다는 조지미라 부르고, 성산5리는 몰라도 새뜸이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렇듯 씨족공동체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동안 자연부락명이 상용되고 있지만, 막상 주민들은 지명에 대한 의미나 유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거나, 구전으로 이어져 고착화되면서 부정확한 지명으로 불리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이에 본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의 기원 및 유래, 지역적 특징 및 제반 사항 등 자연부락명을 중심으로 한 취재를 통해 문화성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하며 지역의 소중한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아울러 군민들에게 뿌리의 중요성과 애향심을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벽진면은 성주군의 서북부에 위치하며 면소재지가 있는 수촌리를 중심으로 동서로 국도 30호선이 관통하고 있고, 남북으로는 지방도가 통과하면서 김천으로 이어져 있다. 면적은 62㎢이며 가구수는 1천593세대에 3천448명으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나 근래에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도시 이주민이 유입되고 있어 명암중리와 한배미 등에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행정구역은 법정 9개리(수촌, 봉계, 매수, 외기, 봉학, 용암, 자산, 운정, 가암), 행정 24개리와 36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벽진면 관계자는 "벽진면내 문화유적으로는 수촌리의 측백나무와 월회당, 기국정, 자산리의 안산영당과 성주이씨영정, 봉계리의 해동청풍비가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벽진면에는 성산여씨를 비롯해 성주도씨, 김해김씨, 인동장씨, 성주이씨, 동래정씨, 청주한씨 등 여러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양반마을"이라고 설명했다. ▣징기·수촌·원정 이 마을은 면 소재지인 수촌리의 중심마을로서 조선시대 연산군때 원정 여희림이 마을을 세웠다고 전해오며, `징기`란 유래는 마을 내에 고목이 된 징계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촌`이란 마을명 역시 원정 여희림이 영봉산 및 천곡서원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고목이 된 많은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수촌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원정`이란 마을명은 마을과 이천 경계에 정자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촌리 마을회관 관계자는 "수촌2리에 있는 측백나무(사진)는 1668년(현종9) 여효증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할 때 선물로 가져 온 것을 만연당 뜰에 심었던 것"이라며 "여효증이 충청도 임천 군수를 끝으로 환향할 때 그 고을민들이 길을 막으면서 더 머물기를 바랐으나 끝내 막지 못하고 그 아쉬움의 정성으로 측백나무를 요강에 담아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높이가 약 25m인 이 측백나무는 모양이 기이해 행인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기도 하며, 경술국치 때는 이 나무가 사흘 동안 울었다고 전해진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됐으며 1982년 군나무 보호수로 지정, 수령은 약 400년이다. ▣솟질·솥질(봉계1리) 약 800년 전 이견수가 마을을 이룩했고, 지형이 솥과 같이 생겼으며 마을 앞 도랑에 너비 1.2m, 길이 3m 정도의 솥 모양 돌이 있어 마을 이름을 `솥질`이라 했다고 한다. 후에 이견수가 정자를 붙여 `정곡`이라 불렀다.   ▣집실(봉계3리) 고려 초 홍언수가 마을을 세워 집이 있는 골짜기란 뜻으로 `집실`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고을 사람들은 서울에서 대가의 집이 왔다고 `대가곡`이라 칭했다고도 한다. 집실 마을 이장상록회 관계자는 "우리 동네에는 1936년 전국의 유림들이 일제에 항거한 장기석의 충절을 기리는 해동청풍비(사진)가 있다"며 "항일 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높이 320cm, 넓이 110cm, 두께 45cm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해동청풍비는 1990년에 지방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됐다. ▣무나물·무나말·하남·수남(매수1리) `무나말` 지명의 유래는 이천의 물길이 흘러내리는 마을의 의미이다. 이후 순우리말인 `무나말`을 한자 훈을 차용해 무나말→무나물→수남→수촌의 형태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초 홍유하가 이 마을을 개척해 흐르는 물이 남방에 있다고 해 `물남방`에서 `무나물`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장기·장귀(외기1리) 1600년경 여효증이 마을에 입향해 장귀정이라는 정자를 건립하고 정자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장귀`라 했다. 나중에 후손들이 마을의 터가 길다 해 `장기`로 개칭하게 됐다.  외기1리 노인회 관계자는 "심지암이 있는 안장기 마을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나오는 `참샘`이라는 옹달샘이 있다"며 "다른 이름으로 `꿀따레` 혹은 `밀달동`이라 불렀다고도 한다"고 전했다. ▣한밤·한배미(봉학3리) `한배미`의 지명은 `규모가 큰 뱅이`란 의미로 `한`은 크다(大)이고 `뱅이`는 물건의 생산업소를 뜻하는 데서 유래했다. 한뱅이는 산간에서 생산하는 함박일 것이며, 함뱅이, 함밤 등으로 변화한 것으로 전한다. 1600년경 이광목이 이 마을에 입향했는데 마을 뒤에 수등산이 있어 등은 어두운 밤에 사용한다는 뜻에서 `한밤`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새내미·봉양·봉알(봉학4리) 약 400년 전 배수광이 이 마을을 이룩했으며, 당시 양지와 음지에 대나무가 숲을 이뤄 이곳에 새가 많이 모여 들었다고 해서 `새남`이라 했다. 몇 년 후 뒷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새보다 큰 봉의 알과 같이 생겼다고 해 봉자를 따서 `봉알`이라 개칭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양지바른 남향이어서 `봉양`이라 개명했다. 봉학4리 마을회관 관계자는 "1980년대 봉학지가 착공되면서 앞쪽에 있던 동네와 길은 수몰되고 새로 봉학댐 확장공사를 하면서 마을 앞쪽이 봉학지로 편입됐다"고 설명했다. ▣웃점복·점복·자산(자산1리) `자산`의 명칭은 자양리, 산전리, 산지리, 나복리 등을 병합하면서 자양과 산지의 이름을 합해 `자산`이라 명한 것이라 전한다. 또한 원래 명칭인 성산의 우리말 `잣뫼`를 차용해 `자산`이 됐다는 설도 있다. 자산1리 마을회관 관계자는 "우리 마을에는 선조 때 정세로가 정읍에서 입향해 그 후손이 집단적으로 살고 있다"며 "기령골(영동) 마을에는 성주인 이장경의 후손이자 도은 이숭인의 후손이 거주하고, 중리 마을에는 선조 때 김해인 허억이 충주에서 입향해 그 후손이 거주하는 명망있는 양반 마을로 통한다"고 말했다. ▣소바우·우암·금암(가암1리) 고대 농업사회의 민속신앙은 절대적인 존재였고 산성의 할미신과 더불어 사직신, 성황신, 용왕신을 숭배했고, 농사의 주신으로는 신농씨를 숭상해서 신농씨의 상징적 동물인 소를 각별히 했다. 이 마을에 소 같은 큰 바위가 있어 소바우마을 혹은 소바우고개 등의 지명이 유래됐다. 1600년경 의성인 김건오가 이 마을에 입향했으며 마을 주변의 큰 바위가 소와 같은 형상이라서 마을 이름을 `소바우`라 했다고 한다. 또 이 바위에 금이 있다고 해서 바위를 깨어보니 금이 많이 나와 `금암`이라고도 불렀다. 취재1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습니다.
최종편집:2024-05-17 오후 04: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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