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에는 월항면 한개마을과 함께 양대산맥을 이루는 최씨 집성촌 법산마을이 있다. 하지만 법산최씨 집성촌은 지역에서 조금 떨어져 고령군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월항 한개마을과는 달리 사료와 집중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한강 정구의 제실인 회연서원은 성주의 문화유적지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약 5km 떨어져 있는 오암서원은 법산최씨의 시조가 세운 서원으로 많은 인재들이 발굴됐으나 문화유적지로는 소외돼 있어 최씨 후손들에 의해 문집 등이 발행되는 정도이다. 이에 법산마을과 오암서원에 대한 탐구와 함께 죽헌 최항경의 생애와 사상을 심층취재함으로써 문화성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하며 지역의 소중한 문화와 역사를 대내외에 알리고, 군민들에게 뿌리의 중요성과 애향심을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성주군 수륜면 남은1리 법산마을은 입향조 죽헌 최항경(1560~1638년, 시조공 최한의 7세) 선생이 터를 잡은 이래 460여년 동안 유가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 남쪽을 가로 흐르는 대가천 냇물 건너 성주군과 고령군을 잇는 33번 국도가 있고, 오암서원 앞 제방이 성주와 고령을 경계하고 있다. 동쪽 멀리 이봉산이 노적까리 모습을 하고 마을 앞 별뫼산은 호랑이가 파수 보듯이 엎드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어서 복된 땅임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서쪽으로는 국립공원 가야산이 병풍을 쳐놓은 듯이 우람한데 남쪽 자라산은 덕은산성에서 완만히 내려 기암절경에 오암서원이 우뚝 서고, 북에서 감토봉이 내려 뻗은 끝자락인 진수봉이 학처럼 나래를 펴 홀로 법산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 안고 있다. □ 산자수명, 배산임수 조건을 고루 갖춘 복된 고장 `법산` 수도산과 가야산이 함께 발원해 넉넉하게 내려준 젖줄 대가천 물은 무흘구곡을 흘러 지나면서 오암 끝자락을 구비치며(옛날 신작로가 나기 전 냇물이 오암을 감돌아 흘렀음) 흘러내리면서 마을 앞 넓은 들녘을 일궈 뒷뜰 언덕에 옛날 남창을 세울 만큼 아늑하고 풍요롭다. 또한 생활터전으로써 풍광이 뛰어난 산자수명, 배산임수의 조건을 고루 갖춘 복된 고장이다. 법산 마을 이름의 유래는 마을 뒷산이 법률 령(令)자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그 뜻을 따 `법산(法山)`이라 하고, 또한 마을 동쪽편 별뫼산(星山)이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 호랑이의 기를 눌러야 하므로 호랑이는 그 잡는 틀을 두려워하니 호외법기라 법자를 따서 법산이라 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 모친에 의해 도학의 대가 한강 정구 선생에게 수학 법산 마을은 죽헌 최항경 선생이 원래 경사(지금의 고양시 원당)에 세거했지만 선조8년(1575년) 16세 때 선대인(進士, 諱 淨)이 가을에 성묘차 남행했다가 선영 아래 성주군 수륜면 남은2리 작천전사에서 돌아가셨으며 선생은 이곳에서 어린 몸으로 삼년시묘를 마쳤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벼슬에 관심이 없다면 굳이 서울에서 살 필요가 없다며 도학이 높은 한강 정구 선생에게 수학하기를 권고했으며, 한강 또한 선산이 있는 곳에 머물기를 권유했다. 죽헌 선생은 나이가 어려도 이미 뜻하는 바가 있어 어렵고 고된 천리장정의 길을 따라 작천전사로 이사해 정착했다. 그러나 곧 법산 산자락 오른쪽 모퉁이에 새로운 집을 지어서 옮겨왔으며 이곳이 성촌이다. 선조25년(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때 이곳도 집과 재산이 불탔으며, 난이 끝난 뒤 외진 곳을 피해서 진수봉 아래(이미 이곳에 성주이씨가 몇 집 살았음) 법산에 다시 집을 지어 살게 됐다. 이로써 자손 대대로 계승하며 한 때 100가구가 넘게 모여 살았으며 인근에서는 법산 영천최씨 마을로 불릴 정도로 동성대촌으로 460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죽헌 선생이 법산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래 불과 10여대에 만석꾼 부자도 나고 자손이 번성하면서 문무급제자 22명, 생진급제자 19명 등 유학자와 효행자가 줄을 이었으며, 전통유가로 선조의 고결한 뜻을 이어 받고 기리면서 잠영세족으로 집성대촌을 이룩했다. 죽헌 선생의 음덕으로 현세에 이르러서도 서울시교육감, 차관, 대학총학장, 교수, 박사, 의사, 각급교장, 언론인, 법조인, 고위공무원, 성공한 기업인 등 5~60여명의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고 근래 103세 장수한 이도 있어 이곳 법산 마을을 더욱 빛이 나게 하고 있다. □ 효행상 수상자 8명 현존해 성주군으로부터 `효 마을` 명명 죽헌 선조의 학덕과 지극한 효행이 전범이 돼 효행자가 이어져 왔으며, 근세에는 석우진사, 권효부의 효행에 뒤이어 효행상을 수상한 8명의 현존 효행자가 마을을 빛내고 있다. 성주군에서는 법산마을을 `효마을 법산`이라고 명명해 표지석을 세웠다. 여전히 새천년에도 후예들이 기라성처럼 번성한 빛이 더한 천혜의 아름다운 마을 법산으로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99년 현존 유지로 발족한 오암학계와 대종회가 중심이 돼 문중 친목활동을 전개하며 즐거움을 함께하고 있다. 취재3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습니다.
최종편집:2024-05-17 오후 04: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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