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여름, 일본의 항복 소식은 오랫동안 억눌렸던 한숨처럼 그들의 귀를 때렸다. 그러나 승전국이 아닌 일본 땅에서 이 소식을 맞이한 조선 사람들의 현실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덕환은 마쓰모토 소장의 비서실에서 기계처럼 손을 움직였다. 종종 들려오는 라디오 방송은 패전 직전의 일본이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는지 생생히 전했다. 동료들은 시선을 피하며 묵묵히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덕환의 머릿속에는 오직 고향의 부모님과 형제들 생각뿐이었다. 그는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밤이 되면 세 형제는 작은 방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삼봉형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았다. "지금이 기회야.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새 출발을 해야 해."    하지만 봉환형은 묵묵히 담배를 피우며 고개를 저었다. "고국에 돌아가도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땅은 이미 황폐해졌고, 일자리도 없다. 여기 남아 새로운 길을 찾아야지." 덕환은 봉환형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형님, 고향에 다녀온지 3년이나 지났어요. 부모님은 연로하시고, 형수님과 만준이는 고향에서 형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가 아무리 넓어도 고향만큼 따뜻한 곳은 없잖아요."   봉환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도 끝없는 갈등이 이어지고 있었다.  · 패전국의 그림자항복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본토는 혼란에 휩싸였다. 공장은 대부분 멈췄고,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공포와 불안이 가득했다. 가와사키 그룹을 비롯한 재벌들이 해체되며, 수많은 직원이 일터를 잃었다. 덕환이 다니던 공장도 폐쇄될 운명이었다. 소장은 더 이상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직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랐다. "여기 남아봐야 아무 소용없어." 누군가가 말했다. 그 말은 점차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덕환은 점점 확신했다. 지금이야말로 떠날 때였다. 그는 형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제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야. 이곳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을 수 없어. 지금이야말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해." 삼봉은 흔쾌히 동의했지만, 봉환은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 결단이튿날 아침, 세 형제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봉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남겠다. 일본이 어떻게 변할지 더 지켜보려고 한다. 고향에 돌아가봐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형수와 만준이에게 돈을 보내겠다. 그리고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돌아갈게." 덕환은 가슴이 먹먹했다. "형님, 꼭 건강하시고, 형수님과 만준이를 잊지 마세요." 봉환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고향에서 잘 지내면 된다. 부모님께 잘 전해라. 내가 꼭 돌아간다고." · 귀향덕환과 삼봉은 봉환을 뒤로한 채 귀국길에 올랐다. 오사카항에서 배를 타고 부산항에 닿는 순간, 두 사람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그들의 눈앞에는 황폐해진 풍경이 펼쳐졌지만, 그 땅은 분명 고향이었다. 열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고향 마을로 향하는 길, 덕환은 마을의 풍경을 떠올렸다. 일제치하 이전의 고요하고 평화로웠을 날들, 부모님의 따뜻한 미소와 형수의 다정한 손길, 그리고 어린 만준이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에 가득했다. 마침내 도착한 고향은 긴 식민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집 앞에서 부모님과 형제가 달려 나와 그들을 부둥켜안았을 때, 덕환은 생각했다. `우리는 돌아왔다.` 그날 밤, 덕환은 가족들과 마주 앉아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봉환이 남기로 한 이유, 일본에서의 고단한 날들, 그리고 그리움 속에서의 결단까지.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덕환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날 이후로도 봉환은 일본에 남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고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덕환과 삼봉은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들은 알았다. 비록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길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움과 희망이 그들을 묶어주고 있었다.
최종편집:2025-09-09 오후 04: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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