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발목을 저리도
모질게 붙들고 있을까.
내 사랑은 끝내 담을 넘어
내게 오지 못했다.
여름내 안간힘으로
목만 늘이다가
눈 부릅뜬 채
뚝뚝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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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너머서 바깥 세상을 내다보며 피어나는 꽃이 있다. 뿌리는 담 안에 있고 눈은 언제나 담 밖을 향해 열려 있는 꽃. 이 시를 읽고 나서 주황빛 능소화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담장을 보면, 귀티 나는 이 꽃의 운명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나를 좀 봐 주세요!" 호소하는 듯도 하고, 제발 손이라도 잡아 달라는 애절한 외침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바깥에 있고 '내 사랑'은 담장 안에 있어서 이 사랑이 충분히 비극적임을 드러낸다. 정작 '눈 부릅뜬' 것은 뚝뚝 떨어지고 마는 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 시인 자신이 아니었을까? '발목을 저리도/ 모질게 붙들고 있'는 존재는 무엇일까..... 두고두고 생각나게 하는 시다.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