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하얗게 하얗게 서리 내려 내 가슴 뒤척이다가
시들어 은행잎 수북히 쌓인 길
쭉정이 몸 웅크리고 상처 위에 상처 덧쌓일까
발 비켜 딛으며 공사장 가는 새벽안개 속
피어오르는 그리운 얼굴 있어
눈물 피잉 돌아 쳐다본 언덕
가슴 속에서 걸어나가
저기
하얗게 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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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은행잎 수북히 누워 있는 길이다. 온통 상처로 성한 곳 없는 쭉정이 몸으로 공사장을 찾아 새벽길을 가는데, 안개 속에 그리운 얼굴 떠올라 눈물이 핑 돈다. 이것이 이 시가 보여주는 풍경의 전부이다.
힘든 노동을 견디며 살아온 시인의 일상을 떠받쳐 준 것이 그리운 이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산구철초 하얀 꽃잎이 정작 시인의 '가슴 속에서 걸어'나간 것이라면, 그리움이 사람의 안에 살고 있다는 말도 옳은 말이다.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