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갈안나는 망치질에 지쳐 담배 한 대 물고 늘어졌다
땡볕에 벗어 던졌던 윗도리가 아쉬워 두리번거리자니
스리슬쩍 내려온 산그늘이 슬그머니 어깨를 붙들고
하던 건 마저 해야지, 재촉을 한다
힝, 내 맘이여 버티고 있는데
자척에서 뻐꾸기가 운다
.....에라, 집에나 가자
산그늘의 속삭임을 담배불에 묻어 끄고
연장들을 챙겨 정리를 한다
염소들을 축사에 몰아 빗장을 치고
개울로 내려와 세수를 한다
휘이적 휘이적 산길을 내려오다 생각해 보니 아차,
도시락 보따리, 또 까먹었구나
왔던 길 다시 가는 것, 참 허기진 일이다
산길을 벗어나 마을로 접어드니
층층다랑이 무논에 개구리들의 가당찮은 합주가 한창이다
담배 한 대 뽑아 물고 논둑길을 걷는다
개구리마저 없는 산골 벽촌의 여름밤은 어떨까를 생각하며
지게 작대기에 매달린 밥보따리의 흔들거림이 빨라질 즈음
저만치 어둠 속에 내 집이 보이고
왈왈거리며 우리집 복순이 제 쥔을 반긴다
이 여편네 여적지 빨래두 안 걷구 머하구 자빠졌능겨
고달스런 잡소리가 먼저 마당으로 들어서면
아빠다, 아빠다, 엄마 아빠 왔어 아빠아......
내 새끼들 발을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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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는 사람의 오장육부를 뒤흔든다. 하던 일도 뻐꾸기가 울면 딱 멈춰 서게 하고 그 소리 다 끝날 때까지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다. 새벽에 그 소리 듣고 잠을 깨기도 하고 그 소리 끝에 다시 잠을 청하기도 하지만 안 들을 도리는 없다. 그 소리는 지금의 나를 단번에 옛날로 데려가 기억의 마당 한가운데로 내동댕이친다. 대구로 이사 가던 날도 화물차 뒷칸에서, 고향을 눈에 담으려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던 나를 끝까지 따라왔었다. 한번씩 아슴해진 동무들 떠올리고 싶어 고향에 올 때도 있었다. 뻐꾸기는 그런 나를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언제나 핏빛 울음을 내게 던져 주었으니까.....
이 시인도 뻐꾸기 앞에선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할 일이 남았는데도 연장을 챙기고 집에 가고 싶어진다. 뻐꾸기가 집에 두고 온 처자식에게로 시인을 데려온다. 다랑논에 개구리들의 합주가 이어지고 이윽고 집에 다다르면 복순이가 먼저 나오고 아이들이 기함을 하면서 달려든다. 꽃보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정겨운 풍경의 무대 뒤에 뻐꾸기의 연출이 눈물겹게 있다.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