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면 동생은 골목길로 나갔습니다.
흐린 날도 비오는 날도 어김없이 여섯 시에 골목으로 갔습니다.
골목에서 놀기는 아직 이른 시간인데
새벽에 일어나 나갔습니다.
한참을 있다가 돌아오는데 언제나 시무룩한 얼굴로
말이 없어서 묻지도 못했습니다.
아침마다 무어 좋은 일이냐고 묻지도 못했습니다.
날마다 초췌하니 야위던 동생이
엊저녁부터는 몸이 불덩이였습니다.
신열이 오르락내리락 밤새 시달리다가
새벽에사 깜박 잠이 든 동생이 헛소리를 합니다.
엄마가 올텐데, 나 일어날 테야.
엄마를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동생은 날마다 골목에서 엄마를 기다린 것입니다.
서울에서 밤새 기차를 타고 새벽에 닿을
엄마를 기다린 것입니다.
가슴이 뭉클해서 동생의 손을 꽉 쥐었습니다.
동생은,
사무친 그리움에 병이 난 것입니다.
엄마는 서울에 있지 않습니다.
엄마는, 엄마는 다른 곳에 계십니다.
나는 동생이 아파도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했습니다.
열이 심해 온 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운 동생을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없는 것이 슬퍼서
종일을 울었습니다.
오늘은 슬픈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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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박용주가 시집『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를 세상에 내놓은 지 벌써 13년째다. 그런데도 전혀 빛을 잃지 않고 있음은, 시집에 수록된 이 시 하나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돌아가신 엄마를 기다리는 동생을 안타깝게 바라볼 뿐, 병이 들어도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는 현실이 읽는 이의 마음을 쓰리게 한다.
그를 둘러싼 삶의 무게가 너무 크고, 진실을 풀어 가는 솜씨가 학생 같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슬픔이 느껴지는 시다. 박용주, 그도 지금 30대 초반의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 그의 슬픔은 이제 끝났을까?
( 배창환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