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24 오후 6:22]
1987년 6월 29일 당시 민정당 제2인자였던 노태우씨는 민주화선언을 하였다. 그 중에는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민주화와 지방자치제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민주화란 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이다. 권력의 남용이란 행정권의 남용에서 비롯된다.
현대국가는 행정권의 비대화를 가져왔고 효율성을 강조하는 행정권은 민주성을 경시하는 속성이 있다. 민주성이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행정권을 견제하는 국회의 역할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이와 만찬가지로 지방자치에서도 지방의회가 제기능을 다 할 때 집행부의 독주랄 수 있는 지방독재를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1991년 우리나라에서 지방의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지방의원들은 보좌관 한명 없고, 무보수 명예직이고 되어 있다. 왜 무보수 명예직으로 했을까? 국회의원 뺏지와 비슷하게 닮은 지방의원 뺏지는 2만3천원 정도지만 관청에 가면 공무원들이 굽신거리고, 단체장을 만나기가 여간 수월하지 않다. 죽을 때 위패 이름도 바뀌니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아마 그런 명예의 반대급부로 무보수로 했는가? 아니면 지방의원은 별 할 일도 없기 때문에, 혹은 생업을 영위하면서 민의를 반영한다는 뜻에서 무보수로 했는가?
지방의원은 연간 임시회와 정기회를 합쳐서 120일간의 회의가 있다. 회의가 없는 날은 지역구의 각 종 행사와 길-흉사를 찾아다녀야 한다. 따라서 생업을 영위하면서 지방의원을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지방자치제가 발달된 선진국의 지방의원들은 우리처럼 약간의 의정활동비 수준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유럽의 지방의원들은 무보수라고 한다. 그러나 그 곳은 겸직이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방의원들에게 겸직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 동안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가면서 이 문제가 제기되면서 의정활동비라고 약간 지급되는 바람에 무보수라는 말은 퇴색되었지만 현실에는 당치도 않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회의원을 하려면 선친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서 아침이 되면 이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을 것이고, 유능한 인재들은 지방의원 진출을 기피 할 것이고, 이대로 가다가는 지방의회가 졸부들의 친목단체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왜 지방의원들의 활동비를 현실화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중앙정부의 견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중앙정부라고 하면 국회의원을 말한다.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처음부터 지방자치제 실시를 탐탁치 않게 여겼을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없으면 지역구에서 세도 누리기가 쉬울 뿐 아니라 혹시 야심을 품은 지방의원에게 자신의 밥그릇 뺏길 우려를 제도적으로 봉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지방자치제 실시를 허용은 했지만 지방의원에게 돈까지 준다면 자동차에 기름까지 주는 꼴이 된다.
보좌관제도도 마찬가지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집행부를 감시-감독을 하고 조례제정과 예산결산 심의의결권을 갖고 있다. 문제는 지방의원들에게는 이를 냉철하게 심사할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집행부에서 제안하는 조례와 예산안을 원안 통과시키는 통법부로 전락된 지 오래다. 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출신의 보좌관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도 안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예산부족 타령이지만 속으로는 집행부와 국회의원의 견제가 아닌가 싶다. 지방의원들이 집행부의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가면 여간 피곤하지 않다. 또한 국회의원들도 지방의원이 보좌관까지 두게 되면 자신의 위세가 더욱 축소될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도 변변찮고 보좌관도 없는 대신에 지방의원들의 전문성을 돕는 부서로 의회 사무처와 전문위원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인사권이 단체장에게 있기 때문에 의회직원들의 거동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혹시 의회직원으로서 역할을 다한답시고 집행부의 문제점을 거론했다가는 다음 인사 때 불이익을 당하기 쉽상이다. 차라리 의원들의 동태를 미리 집행부에게 귀뜸해 주는 것이 `만수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의원들에게 의심을 받고 집행부의 눈치를 보는 이중 인격을 강요당하는 모순된 제도적 사각지대에서 신경쇠약에 걸릴 판이다. 이것을 개선하려면 국회사무처와 도-군의 의회사무처 공무원을 따로 모집 관리하는 그러한 시스템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안된다.
요컨대 지방의원의 의정활동비를 현실화하고 보좌관 제도를 채택하고, 의회사무처를 독립시켜 지방의회가 제 기능을 다하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지방독재를 예방하고 심도있는 예산결산심의를 통해 예산낭비를 줄여 주민들의 세부담을 경감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를 위해 첫째, 주민들의 지방의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것은 이방면의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들의 교육과 홍보에 의해 가능할 것이다. 둘째, 이러한 지방자치법을 만들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대승적이고 전향적인 의식전환이 요구된다. 지금처럼 지방의회가 구색 맞추기 정도로 인식된다면 유능한 인재들이 곧바로 국회의원자리에 도전장을 낼 수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셋째, 지방의회 개선발전의 주체는 지방의원 자신들이다. 어떤 법익도 감홍시처럼 떨어지는 것은 없다. 전국의 지방의원들이 단결 투쟁으로 쟁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박중보 전 경북도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