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노인네가 이사 가면서 옹기를
마당 귀퉁이 복사나무 아래 눕혀놓았다.
나는 오종종한 옹기를 본체만체하고
할 일 없이 오며 가며 나뭇가지만 쳐다보았다.
마음 허허한 지 오래여서 꽃망울이 맺히면
헤벌쭉 벌어지게 하고 싶었다.
밤에 무릉도원 가는 길을 꿈꾸며
휘청거리는 아랫도리를 잠잠히 눕히면
흰 꽃은 밤 지새워 화르르 피어나는지
아침에는 꽃향기 가슴에 차올라 나는 잠깨곤 했다.
옆집에 노인네가 살고 있었다면 코 벌름거리며 옥상에 올라
저승에서 이승 내려다보듯 아득하게 봤을 거였다.
나는 복사나무에게 마음 내어주고 떠나
할일 찾아 떠돌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 사이 봄비가 얼마나 내렸던가.
복사꽃들이 떨어져 옹기에 쌓여 있었다.
꽃잎 한 장씩 한 장씩 줍는데
고층아파트로 이사 간 옆집 노인네는 소식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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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이 피었다 떨어지는 동안 옆집 노인네는 도시의 고층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엎어놓
은 옹기들 위로 복사꽃이 쌓여 있다. 노인네가 복사나무 아래 옹기를 엎어둔 것은 어떤 마
음이었을까? 자기 대신에 복사나무와 함께 살아달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런 가운데 시인
은 옹기에는 애써 무관심한 체 복사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며칠 봄비가 내리고 복사나무는 그의 꽃을 옹기에게 주었고, 시인은 그걸 줍고 있다. 주인 없는 빈집의 황량함을 시인이 대신 지키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 온 노인의 체취와 자연에 대한 애정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시인의 가슴이 조화로운 풍경으로 선하게 그려지는 시다.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