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25년 전 언론에 비친 郡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1982년 격월간지 ‘영우구락부(嶺友俱樂部)’에는 성주군의 연혁과 유적 및 유물, 특산물, 풍습, 역사의 인물들을 비교적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비록 4반세기에 불과한 세월이건만 지금의 모습에 비하면 보다 옛 정취를 진하게 풍기는 듯하다. 독자들에게는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소재를 제공하고 혹여 청소년들에게는 우리고장의 역사와 전통을 알게 함으로써 자긍심 고취에 도움이 될까해서 이를 옮겨보고자 한다. 당시 취재를 담당했던 배종달 취재부장의 기사 원문을 가급적 그대로 인용하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가필(加筆)도 불사했다. 또 지면의 제한 등으로 일부는 발췌했음을 밝혀둔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郡의 연혁과 지형 및 기상
□ 유적, 유물의 모습
□ 생활상과 특산품
□ 성주를 빛낸 역사의 인물
郡의 연혁과 지형 및 기상
‘영우구락부(嶺友俱樂部)’에서는 성주군 편을 소개하면서 ‘경북 서단(西端)에 위치한 성산가야의 구지로 전통 깊은 고장이며, 많은 인재를 배출해낸 지역으로 이름나’라는 표제에 ‘수박의 원산지로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는 성주’라는 부재를 달았다. 덧붙여 성주읍 경산동 성산관(지방유형문화재 제143호)과 금수 영천동의 선바위 사진을 싣고 있다.(지명은 현재는 ‘리’로 표기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동’으로 표기)
글의 내용으로 보아 참외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수박이 주 재배 작물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지금도 가끔 외지인들이 성주하면 수박의 고장으로 떠올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영우구락부(嶺友俱樂部)’란?
여기서 잠시 이해를 돕고 당시 ‘영우구락부(嶺友俱樂部)’를 발행했던 임직원들에게 감사와 예를 표하는 뜻으로 ‘영우구락부(嶺友俱樂部)’에 대해 알아보자.
‘영우구락부(嶺友俱樂部)’는 격월로 발간되는 당시 영남유일의 향토종합지로 1964년 9월에 창간 등록했으며, 등록번호는 문공부(지금의 문광부) 바-83호이다. 발행 및 편집인은 배종대(裵鍾大) 씨였다.
본사는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444-5번지 삼성빌딩 301호실에 두고 주로 국가발전 및 미래상과 영남권의 역사문화, 유명 가문 및 인물 등을 취재해 보도함으로써 영남인들의 자긍심을 드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1988년 종합지의 지도위원에 김영삼, 신현확 씨 등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애석하게도 ‘영우구락부(嶺友俱樂部)’가 언제, 왜 폐간되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 郡의 연혁
▷신라시대: 성산가야의 옛 땅으로서 신라의 영토가 된 후 본피현(本彼縣)이라 하였다.
▷고려시대: 서기 940년(태조 23년) 경산부로 승격했으며, 1018년(현종 9년) 1군(고령) 14현(성산, 약목, 지례, 가리, 팔거, 화원, 황간, 고성, 이산, 안읍, 양산, 대구, 하빈, 인동현)을 영속하여 성주의 위세를 영남에 떨쳤다.
▷이조시대: 서기 1392년(태조 원년) 고려와 같이 경산부를 두었으나 태종 조에 성주로 개칭 목사를 두었다. 1895년(고종 32년) 5월 성주군이라 개칭하여 군수를 두었다. 1905년(광무 9년) 3월 행정구역 변경 후에 운수, 덕곡, 성산, 다산 면을 고령군으로, 노곡면을 현풍군(현 달성군)으로, 증산면을 지례군(당시 금릉군, 현 김천시)으로 각각 편입하게 되었다.
▷일제시대: 서기 1914년 4월 1일 부, 군 폐합시 신곡면을 김천군(당시 금릉군, 현 김천시)으로 옮기고 증산리, 고방리를 금수면에 이속시켜 12면이 되었다. 1934년 2월 1일 지사면과 청파면을 통합하여 수륜면으로, 용두, 성암, 양면을 용암면으로 개편하여 10개면 111개 동이 되었다.
▷해방 후: 서기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가면 중산동을 가천면으로 편입시켰다. 1979년 5월 1일 성주면이 성주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현재의 1개읍 9개면 111동이 되다.
□면적, 인구 및 가구수
성주군은 경북 서단에 위치하여 대체로 원형을 이루고 있다. 군청 소재지는 성주읍 경산동 283-1번지로서 동경 128도 54분 40초이다.
군의 동단은 선남면 도흥동으로 동경 128도24분 10초, 서단은 금수면 영천동으로 동경 123도 2분 10초이다. 남단은 수륜면 백운동으로 동경 36도 46분 10초, 북단은 초전면 소성동으로 동경 36도 3분 12초 지점이다.
면적은 총 617,154㎢로서 용암면이 97,911㎢로 가장 크고 대가면이 28,329㎢로 가장 작다. 총 17,190가구에 인구는 7만7천3백82명으로 이 중 여자가 50.2%를 차지해 그 수가 더 많았다. 가구당 평균 가족 수는 4.5명에 이르렀다. 당시 군수는 김수생(金洙生) 씨, 부군수는 강영호 씨가 재직했다.
※잡지 원문에는 읍면별 면적, 인구, 성비 등과 군 간부, 읍면장, 기관장 등이 표로 수록되어 있으나 지면 관계상 설명은 생략하고 원문의 표를 옮겨 실었다. 단 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 명단은 제외했다.
□지형 및 기후
▷산형: 본 군의 서부 경계에 위치한 수륜면 가야산(1430m) 준령을 중심으로 서북부로 산악지대가 뻗어있다. 가천면의 형제봉(1022), 독용산(956) 및 금수면의 염속산(890), 초전면의 백마산(718)이 높이 솟아 고지대를 형 성하고 있다.
▷하천: 서북부로 산악지대를 끼고 대가천이 동남으로 하류하여 고령군에 이르고 염속산을 수원으로 군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천과 백마산을 수원으로 군의 중간 남부를 관류하는 백천이 합류하여 다시 동북 경계를 남북으로 흐르는 낙동강 중류에 합류한다.
▷평야: 서북부 산악지대 일부와 평야를 제외하고는 분지로 대가천 하류에 오천, 계정평야 및 남은평야, 이천에 용산평야가 있으며 백천에 후포평야 등 비교적 넓은 평야지대를 형성하여 관개에 편리하고 농경지에 적지이며 낙동강 연안은 사질 양토로서 소채 및 특용작물 재배에 적지이다. 또한 각 하천은 굴곡이 심하여 직강공사 등을 시도하여 경지로 활용할 여지가 많다.
▷기후: 성주군은 본도의 서단에 위치해 서북부의 산악지대와 분지로 형성 되어 있어 한서의 차이가 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