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 그 아이를 보았습니다. 소바우 언덕 위 한길 가에서, 아이는 혼자 막대기를 들고 참새 쫓는 시늉으로 장난질입니다. 화물차가 지날 때마다 마른 옥수수들이 아이 얼굴을 감추곤 합니다. 나는 길 건너편에 차를 세워 손을 흔듭니다. 아이도 날 알아보고 막대기든 손을 휘휘 흔듭니다. 사그라드는 화톳불이 바람에 일렁이듯 아이 얼굴이 환한 햇살과 그늘로 교차되며 반짝입니다.
이쯤 하면 그 아이가 누구라는 걸, 우리 학교 아이들은 다 압니다. 아침에 엄마는 밥상 차려놓고 일터 가시고, 아이 혼자 아무도 없는 집을 봅니다. 집이 그 아이를 보는 거겠지요. 가본 곳이라곤 면 소재지 초등학교와 얼마 전 졸업한 연봉산 아래 벽진중학교가 고작입니다. 그래도 학교서 돌아올 땐 홀로 대장이었습니다. 팔뚝만 한 돌멩이도 그 아이 발길질엔 못 당했으니까요.
이건 좀 비밀인데요, 그 아이에겐 진짜 동무가 있습니다. 9년 동안 눈물 콧물 닦아준 공자님 닮은 아이들이 있과, 가끔씩 놀리고 쥐어박는 개구쟁이 아이들도 있지만, 진짜 동무는 따로 있지요. 실은 나도 누군지 잘은 모른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숨겨논 동무들이 있다는 건 참말입니다. 학교선 늘 죽을상이던 아이가 저리도 살판나서 뛰어다니는 걸 봐도 알 수 있거든요.
지금 내가 가는 이 길 밟아 그 아인 학교 다녔습니다. 등굣길에 매일같이 차를 태워줘도 그 아인 내게 한 번도 고맙단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침마다 이 소바우 언덕에 엄마와 함께 날 기다리다가, 내 차를 보면 먹이 찾은 솔개처럼 덥석 올라타면서도 말입니다. 1년쯤 지나자 조금 웃을 줄은 알게 됐지요. 동무들은 그 아이를 슬픈 천사라 불렀습니다.
내가 창을 열고 ‘어∼이’ 부르며 손을 흔들자, 그 아이도 ‘어∼이’ 대답하듯 막대기를 마구 흔들며 쫓아왔습니다. 그러다 말고 우뚝 서서 뭐라 뭐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아마 똑 이렇게 말하고 싶었겠지요.
“어, 또, 가는, 거, 야?”
전에는 남들 다 가는 고등학교 못 간 게 그리 안됐었는데, 이젠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기로 했습니다.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따로 있거든요.. 아이 꽁무닐 쫄쫄 따라 다니는 햇빛이나 똥강아지, 작은 느티 그늘, 무너진 흙 담장, 흰 나비와 배추꽃 노랑꽃이 있는 학교…… 아이는 막대기를 들고 언덕 저편 양떼구름 흐르는 하늘 학교로 올라가고, 나는 문득 땅을 딛고 살아야 할 아이들의 학교로 내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