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 성주문화사업후원회 이사회에서 논의된 조선왕조실록 보전의 현장인 전주사고(全州史庫) 현장답사가 지난 달 26일 있었다. 이 날 서울에서는 이윤기 후원회부회장, 이하영 이사, 도원회 감사, 도규섭 사무국장과 필자가 동행하게 되었고, 성주에서도 배춘석 성주문화원장과 박재범 관광문화재 담당 계장과 박재관 학예연구사가 현장에서 합류했다.
작년 재경성주출향인들이 ‘재경 성주문화사업후원회’(회장 신동욱)를 결성하여 2차에 걸친 성주문화탐방과 문화교실 지원 등 후원을 해오고 있어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 보인다.
성산가야의 성주는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참외뿐만 아니라 조선왕실의 장태문화인 세종대왕자태실, 성산고분, 독용산성 등 수 많은 역사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개발이 안 된 부분과 덜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재경 성주출향인들이 성주문화원과 연계하여 각종 문화를 복원하는데 힘을 보태자는 뜻으로 문화사업후원회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성주사고(星州史庫)의 복원(復元)문제가 거론되어 현재 기초자료조사를 위한 성주군 차원의 준비단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춘추관과 예문관을 상설하고 사관을 두어 날마다 시정(時政)을 기록하였으며, 당대 임금이 전왕시대의 역사를 편찬하여 이를 실록(實錄)이라 하고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봉안하여 왔다.
이렇게 귀중한 사고(史庫)가 전국에 네 곳뿐이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우리의 성주에도 사고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성주인들이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듯싶어 지금까지 유일하게 사고를 보존하고 있다는 전주사고를 답사해보기로 했다.
전주시내 경기전(慶基殿) 궁궐내에 전주사고(全州史庫)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시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 후 경기전은 선조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6년(1614년) 11월에 중건됐다.
연락을 받고 온 전주문화원(全州文化院) 서승(徐昇)원장의 안내로 사고 안팎을 돌아보면서 서 원장으로부터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사고(史庫) 안은 현재 텅 비어있었는데, 서 원장으로부터 왕조실록(王朝實錄)에 대한 이안 경위를 박식한 그의 언변을 통하여 소상히 설명 들었다.
임진왜란에 앞서 우리나라에는 4本의 왕조실록(王朝實錄)이 서울 춘추관(春秋館)을 비롯하여 전주, 충주, 성주에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외사고(外史庫) 중 하나인 성주사고(星州史庫)의 실록은 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중종33년(1538년) 실화로 없어지고, 서울 춘추관과 충주사고에 소장된 실록은 임진왜란(1592년)때 불타 없어졌다.
전주사고의 실록각만 보전되어 조선 태조(太祖)부터 명종조까지 역대 실록과 고려사기문(高麗史紀文) 등 국보급의 귀중한 문적이 남아있는 경기전에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어용(御容)과 어진(御眞)이 봉안되어 있다.
임란으로 전주성(全州城)이 위급한 정세에 놓이게 되자 안의(安義) 손홍록(孫弘祿) 등이 고려사기문과 30여 마차 분량의 왕조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을 거쳐 묘향산 보현사 등지로 대피 시켰다. 후에 임란이 끝나고 강화도 정족산에서 필사본으로 엮어 태백산, 적성산 등지로 분산 보관하다 현재는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렇게 평지에 보관하던 왕조실록의 훼손을 막기 위하여 높은 산으로 분산 보관하게 된 역사적 사실은 안의(安義)가 기록하여 전해 내려오는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당시의 생생한 실정을 밝혀내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실록을 편찬한 것은 1409년(태종9)부터 1413년(태종13)까지 4년 간의 태조
실록 15권을 편찬한 것이 처음이며, 1426년(세종8)에 정종실록 6권을 편찬하고 1431년(세종13) 태종실록 36권을 편찬한 후 태조정종태종의 3조실록 각 2부씩 등사하여 서울의 춘추관과 충주사고에 각 1부씩 봉안하였다.
그러나 2부의 실록만으로는 그 보존이 매우 걱정되므로 1445년(세종27)에 다시 2부를 더 등사하여 전주, 성주에 사고를 신설하고 각1부씩 분장했었다. 그 후 임란 전, 후에 대부분 소실되고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손홍록, 안의 등의 노력으로 현재까지 남아있게 된 것이다.
현재는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지만, 전주사고 보관 실록 784권 614책 47궤, 기타 전적이 64종 556책 15궤가 봉안되어 있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실록각은 1991년 이를 복원하여 현재 보존하고 있다.
이처럼 국보급 문화재를 보전했던 사고가 성주에도 있었다는 생생한 기록으로 알게되었으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긴 하지만 국사편찬위원회의 도움을 받고 고증을 거쳐 실록각만이라도 원래의 자리를 찾아 복원했으면 하는 바람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다행히 근래에 와서 성주군민, 출향인할 것 없이 많은 성주인들이 문화사업 복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되고 기대를 해 보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