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경복궁에서 거행된 조선시대 왕실의 풍속 가운데 특별한 형태를 가진 장태의식을 재현하는 행사가 있어 보러 갔었다.
재현 현장에서의 설명에 의하면 “장태의식이란 왕자나 공주의 출산시 행해지는 의식으로 태는 태아에게 생명력을 부여한 것으로서 출산 뒤에도 소중히 보관되었으며, 특히 왕실의 태는 국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하여 더욱 소중히 다루어졌다” 고 한다.
이 의식의 중요한 주체로서 우리 성주군이 관여하고 있었으며, 의식의 첫머리는 자랑스럽게도 이창우 성주 군수 인사로부터 시작됐다. 연유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군 월항면에 소재한 ‘국가사적 제 444호’인 세종대왕자태실과의 관계 때문이라 생각되었다. 나는 우리 성주군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그 이상 아는바가 없다.
이 날 행사설명서에 보면 4월 16일 경복궁에서 봉출의식을 거행하고 4월 26일 성주에서 봉안의식이 거행된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봉출의식에서부터 봉안의식까지 10일의 간격을 두었는데, 아마 이것은 성주에서의 참외 축제행사와 맞추려고 한 것이라 보이지만, 당시 실제로 서울에서 봉출의식이 있은 후 성주에서의 봉안의식이 거행되기까지는 얼마의 기간이 소요되었을까 좀 궁금했었다.
천리 길은 못되더라도 수 백리 길은 되었을 것이고, 그 중간 중간에 머물든 고을에서는 나름대로 큰 의식이 거행되지 않았을까? 임금님이 어명으로서 백성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도록 당부는 계셨겠지만 매우 소박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장태의식을 재현하려면 간략화 된 의식을 해마다 똑같이 반복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봉출의식으로부터 봉안의식까지를 그 당시의 의궤에 따라 철저하게 고증한 의식으로 승화시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아 거행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있어서다.
기왕에 경복궁에서 재현하는 장태의식이 우리 성주가 자랑하는 생활사(生活死)문화와의 연계자원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태의식의 비중이 막강한 것인 만큼 이 귀중한 사료가 무형문화재로라도 지정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에서 하는 말이다.
이 의식이 있었음으로 해서 세종대왕자태실이 있게 되었고 이것이 중요사적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한, 봉안의식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됐다.
그 거창한 행사를 해마다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사정에 따라 격년 또는 3년에 한번 개최하더라도 이른바 풀 코-스 의식은 거행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즉 봉출의식에서부터 봉안의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거쳐가게 되는 각 고을도 동참해서(릴레이식) 거국적인 역사 문화행사로 승화시켜 중요무형문화재의 지정은 물론 UNESCO에서 지정하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의 등재까지도 추진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잘 아시다시피 일제 강압기를 겪은 우리 문화유산, 특히 무형문화재의 경우 많이 말살되었고 이제 말살된 문화유산을 재현 보존할 시점이 되었으니 내실을 기해서 본래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알찬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구나 생의 의미를 존중하고 재현해보려는 의식이니 만치 오늘날 생명의 존엄성을 기리고 소중히 다루는 의식이야말로 의식의 거추장 함은 논외로 하더라도 본래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것은 매우 뜻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잘 아시겠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 되여 있는 강릉 단오제가 있다. 옛날 산골에
서의 산신을 숭앙하는 샤머니즘의 의식에서 출발하여 심지어 김유신 장군까지 등장시키고 나아가서 범일 국사의 업적까지 끌어 들여 장엄한 모습의 축제로 발전시키지 않았는가.
우리 장태의식의 문화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태의 소중함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니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소홀해서는 안 될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意識)이 스며있다고 생각되었다.
졸속 추진은 안 되겠지만 철저한 고증 하에서 현대인의 감성까지도 소화한 전국 규모의 행사로 발전시킬 수는 없을까. 이 의식의 소중함은 바로 우리 성주의 자랑인 세종대왕자태실이 있기에 우리에게는 더없이 절실함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