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게 보내고
늦은 밭에서 돌아오니 캄캄한데
홀로 사는 옆집의 먼 척 누님이
아직도 밭에서 일을 하시네
짚 옆 서 마지기 밭에 양파 심어놓고
봄부터 걱정이 양파 함께 자라더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분신처럼 가꿔온 내 새끼 같은 양파가
뙤약볕서 사흘 나흘 작업해놔도
가져갈 사람 없어 저렇게 썩고 있는 것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르리
안 팔면 안 팔았지 허천무라지로
발길에 툭툭 차이며 천대받는 것을
차마 눈뜨고는 피 치솟아 볼 수 없다는 것을,
날은 가물어 다시 밭에 씨앗 넣을 수도 없을 텐데
저러다 저녁도 혼자 굶지 싶어
나도 모르게 담을 넘어 갈퀴 든 그 손을 잡으니
힘없이 웃으며 일손을 놓고
밭이나 깨끗이 치워놀라 그런다며
돌아보는 눈길이 한숨으로 물드네
양파값 마늘값 똥값인들 어쩌랴
짙어오는 어둠처럼 고단함만 땅에 스미고
다 용서할 것 같은 이 넉넉한 연민
여기 말없던 역사 소리치면서
두 마음속에 흘러가네 흘러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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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되지 않는 것은 농사일을 게을리 해서가 아니며,'양파값 마늘값 똥값'인 것은 작물이 부실해서가 아니란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땅이 삶의 근본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땅을 딛고 일어서고 땅 위에 쓰러진다. 그래서 땅은 사람을 한없이 들뜨게 하고 가라앉게도 한다. '고단함'으로만 지어온 농사. 땅에 기대어 삶을 경작해 온 사람들은 스스로 편안한 삶을 고대한 적은 없건만 그래도 남는 것은 언제나 빈뿐임을 '양파'농사를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크기는 그 슬픔을 넘어 '다 용서하'면서 이웃과 함께 역사 속으로 스스로를 흘러가게 하는 데 있다. 그것이 곧 흙을 닮은 사람의 크낙한 마음 아니겠는가.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