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익 (성주고 1)
오늘도 울려 퍼지는 알람소리와 전쟁이다. 소리가 얼마나 큰 지 우리 방 4총사 모두 잠과의 싸움에서 백전백승이다. 아침밥을 급 히 먹고 등굣길에 향하는 모습이 전쟁통의 피난민 같다. 뛰어가면서 신발을 갈아 신고, 단추를 잠그는 모습이 참 꼴불견이다.
8시 20분. 자 이제 10교시와의 전쟁이다. 필통이라는 무기고에서 각자의 무기를 꺼내어 책과의 사투를 벌인다. 싸움은 여러 방면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녀석은 잠과의 싸움을 하다가 지고 만다. 그리고 또 어떤 녀석은 화장실이 너무나 가고 싶어 창밖으로 보이는 ‘화장실’이라는 글자와 눈싸움 중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싸움은 바로 선생님과의 싸움이다. 학생들과 선생님과의 탐색전, 초반부는 학생들과 선생님 간의 대등한 대결로 보이나 후반부로 갈수록 선생님의 승리가 굳어진다. 몇몇 장교 학생들은 선생님과 맞서며 수업 중 살아남는다. 4교시 끝.
잠시 동안의 휴전이다. 이 때 학생들의 단결된 모습은 무엇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군량미를 먹을 때의 학생들의 표정은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울려 퍼지는 종소리. 다시 전쟁이다. 5교시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다. 배부른 학생들은 넋을 놓고 잠에게 대패하고 만다. 아, 불쌍한 쓰러진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은 약간의 자비를 베풀어주신다. 선생님들께서도 이 전쟁을 겪어 봤기에 우리들을 이해해 주시는 것일까. 슬며시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안타까움이 배어 나온다.
오랜만의 체육시간. 이 때는 전쟁이 아니라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구, 축구, 배드민턴, 탁구. 웃으며 즐기는 이 시간이 끝날 때 흐르는 물줄기는 힘들고 지쳐 흐르는 땀방울이기보다는 함께 해서 행복한 빗방울이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밝게 웃으며 체육관을 나가는 모습에서 가슴 속 ‘우정’이 깊이 박힌다.
어느새 저녁 시간. 돌려 받은 무전기를 모두 들고 각자의 지원군에 무전을 한다. ‘아버지, 어머니’라는 지원군은 너무 강한 지원군이라 말 한 마디로 학생들의 사기를 높여 주신다. 왜냐하면 그들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끊을 수 없는 그런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기가 충전된 우리 학생들은 야자시간이라는 야전에 돌입한다. 이 야전은 가장 어려운 싸움이다. 자신과의 싸움은 자신의 굳은 의지가 없다면 이길 수 없기에 더욱 힘겨운 싸움이 된다. 쌓인 피로와 고통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또 한 걸음 내딛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비록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라 할 수는 없지만 지치고 힘들어도 자신의 의무인 공부, 그 싫어하는 공부를 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는지...... 이것은 학생이 되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행복이다. 전쟁 속의 행복.
종치기 10분 전 창밖으로 어두컴컴한 넓은 운동장을 보며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때 모든 학생은 자신이 사령관이 되어 내일의 전쟁 전략을 세우고 꿈을 되새긴다. 딩동 댕동. 10교시와 야자를 끝낸 학생들의 환호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보초를 서야하는 여러 기숙사 학생은 다시 장소를 옮겨 마무리 휴전 협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교실보다 작은 공부방 터는 학생들의 최후의 무기 ‘집중’을 최고조로 가동시킨다. 마지막까지 집중을 최고조로 유지하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12시 20분. 기숙사 학생들도 완전히 무기를 넣고 내무반으로 돌아간다. 이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동료들과 재담을 나누고 함께 먹고, 씻고, 웃으면 그 순간 모든 스트레스가 즐거움이 되고 어떤 전쟁도 두렵지 않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에너지 ‘추억’도 더 간직할 수 있게 되니 얼마나 행복한가.
새벽 2시. 고요하고 편안한 밤 속 하루 동안 피곤했을 우리 제군들은 아름다운 꿈을 꾸며 평온한 나라로 떠난다.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도 우리는 전쟁을 해야 하겠지만 나의 꿈과 희망이, 내 가족이, 선생님이 그리고 친구들이 함께 해주는 것을 알기에 편히 잘 수 있다. 비록 전쟁터인 학교에서의 시련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나 언젠가 내 꿈이, 추억이 된다면 지금의 생활이 꼭 고통의 시간일 수 있을까? 이를 알기에 우리들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일의 첫 전쟁 시발점인 알람을 맞추는 것이 아닌가. 마치 값지고 알찬 수확물을 얻기 위해 일찍 논밭으로 나가는 농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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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며칠 전 글을 써 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항상 느끼던 전쟁터, 학교의 모습을 글의 소재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평소 학교 생활을 곰곰이 떠올리며 글을 써보았는데, 이렇게 큰상을 받게 되다니 한편으로는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기쁩니다. 부족한 저에게 이런 큰상을 주셔서 감사하고, 항상 곁에서 힘이 되어 주시는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전쟁처럼 느껴졌습니다. 중학교와 너무 다른 학교 생활이 힘들었고 체력과 시간 관리 등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터가 나중에는 추억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을 내고, 차츰차츰 적응해 나갔습니다. 후일에 추억을 안겨줄 이 전쟁터가 저에게 이런 큰 힘과 감동을 주다니, 감격스럽기만 합니다. 하루하루 지루하고 힘겨운 고교 생활에 좌절하지 않고 ‘꿈은 이루어진다.’는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의 대표 구어처럼 친구들이 더욱 더 노력하여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얘들아, 좀 더 힘내자! 우리는 고교 전쟁터의 영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