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설은 가수활동 기간 중 원창자로서 몇 곡의 가요를 취입하였으며 제작, 보급된 음반은 몇 종이나 될까. 백년설 연구에 참고가 되고자 그 동안 조사, 수집해온 백년설의 취입가요와 음반들을 종합적으로 소개하여 보고자한다.
한국 가요사(歌謠史)와 음반사(音盤史)를 기준으로 관련문헌과 자료 등에 소개된 백년설 가요와 음반들을 종합, 상당 부분의 오기(誤記)를 수정·보완하면서 그 목록을 작성해 본다. 이 글에서는 백년설의 가요와 음반들을 가요 취입시기를 좇아 가요명, 음반 제작사, 작가명, 음반명 별로 정리하고자 한다.
Ⅰ백년설이 취입한 가요들
성주농업보습학교(현 성주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한 이갑룡(李甲龍)은 애당초 가수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 은행원 생활을 하던 그가 스스로 이름을 이창민(李昌民)으로 바꾸고, 시와 희곡을 쓰며 문학에의 포부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던 중이었다. ‘딱한 사람들’이란 희곡을 쓰기도 했다.
이창민은 23세에 당대의 테너 안기영에게 시에 소질이 있음을 인정받고, 콜롬비아 레코드사에 소개되어 그곳에서 작사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가 가요계에 첫발을 내딛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 박영호 및 당시의 인기가수 채규엽, 박향림, 미스코리아 등과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창민이 극작 공부와 활동을 위해 도일(渡日)하려던 참에, 일본에 있는 태평레코드사 녹음실로 취입하러 가는 취입단 일행에 편승하게 되었다. 일본에 도착하던 그 날 밤, 박영호 감독 아래 가요 ‘유랑극단’을 취입하게 되었다. 여러 번 NG를 연발한 끝에 간신히 녹음을 마쳤다. 1938년 12월의 일이었다.
취입을 끝낸 그는 스스로 예명을 ‘백년설(白年雪)’이라 지어 사용하였다. 언제나 백의민족의 포부와 꿈을 지니고 싶다는 뜻으로…. 그 가요 ‘유랑극단’의 가사를 보자. 이 노래의 2·3절 가사는 이창민 자신이 지었다고 한다.
1. 한 만흔 군악 소리 우리들은 흐른다
쓸쓸한 가설 극장 울고 새는 화로불
낫설은 타국 땅에 뻐꾹새도 울기 전
가리라 지향 업시 가리라 가리라
2. 밤 깊흔 무대 뒤에 분을 씻는 아가씨
제 팔잔 남을 주고 남의 팔잘 배우나
오늘은 카추사요 내일 밤엔 춘향이
가리라 정처 업시 가리라 가리라
3. 흐르는 거리마다 아가씨도 만컷만
이 가슴을 넘는 정을 밧칠 곳이 업구나
차듸찬 타국 달을 마차 우에 실고서
가리라 향방 업시 가리라 가리라
※유랑극단(박영호 작사, 전기현 작곡, 백년설 노래)
1939년 1월 태평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이 가요 ‘유랑극단’은 뜻밖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써 백년설은 태평레코드사 전속 가수로 탄생, 가요계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백년설의 태평레코드사에서의 가요
(곡명의 표기는 원반의 것을 그대로 따름)
음반번호, 곡명, 작사가, 작곡가, 발행 연월 비고
T8602 유랑극단 박영호 전기현 1939
T8602 눈물의 散文詩 박영호 전기현 1939
C8611 두견화 사랑 천아도 전기현 1939
T8619 왜 왓든가 광산무적인1939
T8633 마도로쓰 수기 처녀림 이재호 1939
T8656 一字一淚 유도순 전기현 1939
T8656 북방여로 임서방 이재호 1939
눈물의 백년화 박영호 이재호 1939 뒷날 진방남의‘세세년년’으로 개작
T8665 나그네설움 조경환 이재호 1940
T2001 비오는 海關 조경환 무적인 1940 뒷날‘비오는 항구’로 개명
T2001 어머님 사랑 조경환 이재호 1940
T2003 第三 流浪劇團 유도순 전기현 1940
T2003 춘소화월 조경환 전기현 1940
T3001 한잔에 한잔사랑 처녀림 이재호 1940
T3001 눈물의 수박등 김상화 김교성 1940
T3005 꿈꾸는 항구선 처녀림 이재호 1940
T3007 蕃地없는 酒幕 처녀림 이재호 1940
T3007 산팔자 물팔자 처녀림 이재호 1940
T3008 남포불 역사 불사조 김교성1940
T3017 만포선 길손 박영호 이재호 1941
T.3028 복지만리 김영수 이재호 1941
T3028 대지의 항구 김영수 이재호 1941
T3029 허허바다 처녀림 이재호 1941 뒷날‘쌍돗대 탄식’으로 개명
T3033 고향길 부모길 처녀림 김교성 1941
T5001 마도로쓰 박 처녀림 김교성 1941 뒷날‘외항 선원’으로 개명
T5006 石油燈 길손 처녀림 이재호 1941
T5006 靑春海岸 처녀림 이재호 1941
T5009 想思의 月夜 김영일 김교성 1941
男中男 김영일 김교성 1941
T5016 봉화대의 밤 처녀림 김교성 1941
C5020 백년항구 처녀림 전기현 1941
아리랑 만주 윤해영 전기현 1941
에서 보듯이 백년설의 히트가요 대부분은 1939. 1∼1941. 12월 동안 태평레코드사에서 쏟아져 나왔으며, 이로써 그는 당대 최고 가수의 반열에 오르며 남인수와 쌍벽을 이루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중에 「나그네 설움」과 「蕃地없는 酒幕」은 지금도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는 백년설의 대표곡이 되어 있다. 애조를 띈 백년설 특유의 음색은 당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대변해주기에 걸맞아 「두견화 사랑, 「어머님 사랑」, 「일자일루」, 「눈물의 백년화」,「비 오는 해관」, 「한 잔에 한 잔 사랑」, 「만포선 길손」, 「산 팔자 물 팔자」, 「대지의 항구」, 「고향길 부모길」… 등등의 가요를 탄생시키면서 민족의 애환을 여과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