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 니, 오늘 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야야, 어디 가노?
- 예......, 바람 좀 쐬려고요.
-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
안상학 시인은 조선 유학의 본향인 안동 사람이다. 그는 시집 에서, 아배(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눈물겹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 시는 그 절창 중 하나다. 바람처럼 ‘뻔질나게 돌아다니’던 그를 인정해주고 기다려주는 아버지는, 그때 이미 자식이 가려는 시인의 길 또는 역마와도 같은 삶의 길을 예감했던 듯하다. 그리고 무심(無心)을 가장한 그의 심중 깊이 자식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것이 틀림없다.
삶은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지 누군가 떠밀어 넣는다고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부자(父子)간의 선문답(禪問答)을 연상시키는 이 시 속의 차원 높은 대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이미 가신 아배를 자신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집 나간 다음 돌아오는 날까지 마음으로 기다려주던 아버지의 마음이나, 지금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 ‘감감 무소식’인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하나가 되고 있으니, 부자(父子)간의 사랑은 이처럼 생사를 초월하여 깊은 것인가.
- 배창환(시인. 성주문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