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어느 날 밤 신하를 모아 놓고 연회를 열었다. 한창 흥겹게 주연이 벌어지고 있는데 창문 사이로 세찬 바람이 불어 닥쳐 촛불이 다 꺼져서 별안간 방안이 암흑천지가 되었다. 이 틈을 타서 어떤 짓궂은 신하 한 사람이 왕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왕의 애첩의 귀를 잡고 입을 맞추었다. 이에 당황한 여인은 엉겁결에 그자의 갓끈을 움켜잡고 떼어버렸다. 그리고는 즉시 왕에게 고했다. “왕이여 어떤 놈이 이 어둠을 틈타서 소첩에게 용서 못할 무례를 범했습니다. 즉시 불을 켜서 이놈에게 벌을 내리소서. 제가 그의 갓끈을 떼었나이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즉시 영을 내렸다. “불을 켜기 전에 각자 자기 갓끈을 떼어서 버려라. 영을 어긴 자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모두가 자기 갓끈을 떼어 던졌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주연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2년 후 초나라가 이웃 진(晋) 나라의 공격을 받아 다섯 번을 싸워 다섯 번을 다 패했다. 장왕이 위기에 몰렸다. 그때 돌연 한 무리의 군사를 거느린 한 장수가 나타나서 패주하는 초나라 군사 편에 서서 적과 싸워 연전연승하여 적군을 물리쳤다. 가위 목숨을 내어놓고 싸운 장수를 보고 너무 감격한 장왕은 목이 멘 소리로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이 위기에 목숨을 내어놓고 나를 도와주었소?”
장수는 왕 앞에 큰절을 하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어느 날 밤, 왕께서 베푸신 연회석에서 촛불이 꺼진 틈을 타서 왕의 후궁에게 무례를 범한 자가 바로 소신입니다. 그날 이후 대왕의 면전에 나타날 면목이 없어 산중에 들어가 무예를 닦으며 왕의 은혜에 보답할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왕께서 그날 밤 즉시 불을 켜서 갓끈의 임자를 확인 하셨더라면 소신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은혜를 갚게 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한(漢) 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雪苑)’에 나오는 ‘절영회(切纓會 : 갓끈을 끊은 모임)’ 라는 고사의 이야기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그의 가장 큰 정적에 에드윈 스텐턴(Edwin M. Stanton)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변호사 선배로서 변호사 시절부터 링컨을 시골 애숭이 변호사라고 멸시했다. 그는 대중 앞에서 링컨의 인품을 깎아 내리고자 전력을 다했다. 심지어 신체적 외모에 대해서까지 매정한 말을 하고 잔인한 욕설로써 링컨을 모욕했다.
링컨의 몸에 털이 많다고 해서 ‘팔이 긴 고릴라’라고 험담을 했다. “여러분 고릴라를 구경하러 아프리카에까지 갈 필요 없습니다. 링컨을 보면 되니까요” “고릴라는 대통령 궁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동물원이나 아프리카 적도로 보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내각을 짤 때 그렇게도 자기를 모욕하고 무시했던 스탠턴을 가장 중요한 자리인 육군장관에 임명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 그러나 링컨은 말했다. “예, 나는 그가 나에 대해 한 무서운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 전체를 살피고 나서 나는 그가 이 일에 가장 적임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백 번 무시했던들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가 장관으로서 일만 잘 한다면 말입니다”
스탠턴은 육군장관으로서 국가와 대통령에 대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봉사했다. 그리고 링컨이 암살되었을 때 링컨에 대해서 한 찬사 가운데 스탠턴의 한 말이 가장 감동적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링컨을 지금까지 생을 받은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라고 말하면서 “링컨이야말로 세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산다”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친구 사이에 싸우게 되면 어른들로부터 “힘센 아재비가 참아라”라는 말을 곧잘 들었다. 참고 너그럽고 여유 있고 감동을 주는 것은 힘센 사람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이 강한 자의 덕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오기만 판을 치고 있다. 감동을 주는 말은 애써 피하고 감정 상할 말만 골라서 한다. 양보하거나 한 발 물러서는 것을 바로 패배라고 생각하고 일수불퇴만이 승리라고 여긴다. 마음의 여유나 생각의 여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고 오직 증오와 적개심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정치판이 그렇고 노사관계가 그렇고 심지어 교육 현장마저 그렇다.
이러한 메마르고 살벌한 세상을 바라보며, 힘있는 사람이 조금만 더 너그럽고 따뜻하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은 좀 더 살 맛 나는 세상이 될 텐데, 대통령께서 당선이 확정되고 난 다음 모교를 방문하기 전에 자기를 괴롭혔던 언론매체를 먼저 찾아가서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우리에게는 왜 이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을까? 좁은 땅 덩어리 속에 살고 있는 탓일까? 아래로 좁은 땅만 내려다보지 말고 눈을 들어 무한대한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넓히고 여유를 좀 가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