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낡은 은행잎 후루룩 져 내리는 캄캄한 새벽, 물통을 챙겨 가야산으로 올라갑니다. 느티 잎새가 빗발처럼 날리는 아스팔트길에, 먼저 이 거리를 정처를 정한 잎새들이 새벽바람에 난파선의 승객처럼 막다른 곳으로 몰립니다. 언덕바지 노인복지시설 실로암을 지나, 언제나 이 시각에 산길을 오르는 노인 곁을 지나, 아직 잠자리를 찾지 못한 별들이 떠다니는 하늘 아래 솔숲 가야산 생수 앞에 다다릅니다.
지상의 바람이 차가울수록 땅속 저 깊은 곳에서 청아한 해금 소리처럼 울려나오는 가야산 생수는 참 따스하기도 해서, 나의 사지와 체온이 온통 맑아져 산의 뿌리 실핏줄 어디에고 닿아있는 듯합니다. 한참만에 생명수를 가득 담아주신 산신님께 고맙습니다, 합장 배례하고 돌아섭니다. 노인이 고개 위로 올라섭니다. 한 쪽박 넘치도록 받아든 노인의 심장으로 가야산 생수가 철철 흘러들고 있습니다.
이 숲길에는 산신님말고도 그윽한 어둠들이 살고 있습니다. 여기를 살다 간 혼령들이 이 새벽에도 눈뜨고 있는 거겠지요. 아직은 풀이며 나무며 바위들이 어둠의 큰품 안에 서로 엉겨 새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붉은 먼동이 저 아래 거미산 능성이부터 감아 돌 무렵 나는 서둘러 산을 내려옵니다. 마당에 들어서면, 아이들의 곤한 꿈길을 우리 방울강아지가 쫄래쫄래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식구들의 머리맡에 길어온 찬물 한 그릇씩 얹어놓고 따뜻한 아랫목에 손발을 첨벙 담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