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
네가 왔더라
살아 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목놓아 울기만 하더라
네가 어쩌면 그처럼 여위었느냐
멀고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
네가 날 찾아 정말 왔더라
너는 내게 말하더라
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눈물어린 두 눈이
그렇게 말하더라 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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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가슴 아픈 시는 다시없으리라. 어느 날 북녘에 두고 온 어머님이 편지를 보내왔다. 두 모자의 상봉은 현실 세계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꿈에서나 가능했다. 어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장년이 된 아들(시인은 이제 노인이 돼 버렸다)은 목놓아 울기만 했고...."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 말하는 아들의
눈이 젖어 있다고 어머니는 편지에서 말하고 있다. 아들 또한 그 편지를 꿈에서 받았을 것이다. 꿈속의 상봉, 이들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살아 반 세기 동안이나 생이별로 생사를 모르고 다만 서로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소원해야 하는가.
꿈에 그리던 8.15 해방은 그렇게 왔다. 뒤이은 분단과 전쟁, 이산가족...... 이 한의 매듭은 언제 풀릴 것인가? 다시 돌아온 해방의 날에 생각느니, '해방'이 진정으로 '완성'되는 날은 이 한으로 피멍든 노시인(老詩人)과 노모(老母)의 가슴을 쓸어주는 통일의 날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이대로 가고 만다면 우리는 그 죄를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즉 우리가 이 시를 두고 어찌 눈물 한 방울 없을 것인가.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