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자구책 마련이 최선의 정답
참외덩굴을 태우지 말고 퇴비화 하자는 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관내 곳곳에는 ‘참외에는 참외덩굴이 보약’ ‘참외덩굴 절대 소각 금지’ ‘참외덩굴 퇴비화’ 등의 현수막이 나붙고 공무원들은 가두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사회단체들은 자율감시단을 구성해 농가 지도 및 감독에 나서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으로 참외덩굴 소각은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간혹 소각하는 농가가 있긴 했어도 현재까지 어림잡아 전체 농가의 60∼70%는 퇴비화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류태호 郡 친환경농정과장은 농민들의 호응 정도를 고무적인 것으로 평가하며 “시작 첫해 참여 정도로 보아 내년부터는 완전정착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농민들의 호응정도가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소각으로 발생하는 매연과 매캐한 냄새는 중부고속도로의 교통흐름을 방해하고 주민 건강을 위협하는 등의 부작용으로 명품참외를 자랑하는 지역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으로 이를 개선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굳이 류 과장의 평가를 빌리지 않더라도 참외덩굴을 태우지 않고 퇴비화하려는 움직임은 예년에 비해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할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현재의 방법대로 퇴비화를 추진하는데는 고마력의 트랙터와 파쇄기는 필수적인 장비다. 파쇄기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35마력의 트랙터가 있어야 하지만 이 정도의 트랙터를 보유한 농가는 그리 많지 않다. 트랙터를 보유하지 않은 농가가 마을에 한 대 꼴로 보급된(현재 총 245대) 파쇄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트랙터를 임대할 수 밖에 없고 결국 비용이 발생한다. 비용발생은 농가에서 퇴비화를 망설이거나 야간에 태우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파쇄기를 사용하는 데도 문제가 있다. 회전 속도를 빨리 하지 않으면 덩굴이 파쇄기에 감겨 버린다. 파쇄기를 고속으로 회전시키기 위해서는 트랙터의 엔진 회전속도를 빠르게 해야 한다. 45마력 이상트랙터는 한번에 파쇄가 가능하지만 40마력 이하는 2번 왕복해야 하고, 중간 마력은 한번에 하되 도중에 잠깐씩 쉬어야 한다. 대당 2천500만원 이상 하는 트랙터 주인은 속이 쓰릴 수 밖에 없고, 유류 소모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분진이나 소음 등에 의한 작업환경도 엉망이다. 비닐을 벗긴 하우스 작업은 그나마 양반이다. 비닐이 씌워진 하우스 작업은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사정이 이러니 비닐하우스 1동 당 2만원 정도를 준다해도 트랙터 소유자가 작업을 꺼린다고 한다.
郡 집행부와 의회에서는 참외덩굴 퇴비화를 촉진한다는 명목에서 농민 부담 감소를 고려하게 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보조금 지급 문제로 이어졌다. 비닐하우스 1동 당 5천원을 지급할 계획으로 추진되었으나 결국 없던 것이 됐다. 그 이유는 보조금을 지급해도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과를 예측하기도 어렵고, 예산 집행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상공인의 불만과 참외농사를 일찍 종료하고 열처리, 물 담기를 한 농가까지를 고려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초전면의 한 농민은 “크게 도움도 되지 않는 보조금 주지 않았다고 탓하는 것이 아니라 오락가락하는 농정에 화가 난다”고 했다.
사실 보조금 지급 문제는 심사숙고해야 할 사안이다. 한번 시작하면 매년 집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보조금이 갖는 일반적인 성격이다. 참외재배 농가에 균등하게 1동 당 5천원씩을 지급한다면 군 전체 비닐하우스를 10만 동으로 봤을 경우 연간 5억원이 필요하다. 군 예산 5억원을 매년 땅에 묻는 꼴이다. 郡 예산 금고가 화수분이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또 농가 당 평균 20동이라 해도 10만원을 보조하는 수준에 불과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없다.
퇴비화할 경우 다음해 병해를 우려하는 농민들의 인식도 만만치 않다. 흰가루병·담배가루이·아메리카 굴파리 등에 의해 피해를 본 농민들은 덩굴을 땅에 묻었을 경우 다음해 이 같은 병충해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을 염려해 태우기를 주장한다. 일부 전문가들도 태우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맞장구 치고, 인근 하빈 동곡 칠곡 등에서 일어나는 소각현상은 농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대황리의 한 농부는 “일부 우려가 있지만 염려할 수준은 아니다. 퇴비로 지력을 높이는 것이 더 낫다”고 평가한다.
참외덩굴 퇴비화 사업은 일단 항구 정착에 청신호라고 평가할 만큼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2% 정도 부족하다. 예산리의 김 모씨는 “보다 용이한 방법으로 퇴비화를 추진할 수 있는 파쇄기 개선 및 개발, 처리 방법 등을 강구하고, 퇴비화의 유용성과 다음해 농사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또 보조금 없이도 농민들이 자구책을 모색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태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퇴비화하기도 어려워 참외덩굴을 하천에 내다 버리거나 논두렁에 쌓아놓는 농심을 깊이 헤아려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