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 풍찬노숙 그리고 감옥 생활 그런 남편 김찬기와의 결혼 십년 사랑한 시간은 그 절반도 못되었다. 참 선비는 뼛속에 서릿발 같은 회한의 칼날을 세우고 피로써 우매함을 태우는 횃불의 혈서를 쓰기에 그들은 의로움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을 더운 여름날 땀내 나는 홑옷을 벗는 것보다도 더 가벼이 여겼다. 창숙 선생 일제의 고문에 어금니 깨물며 자신의 무릎 뼈가 다 부서져 나가는 걸 내려다보면서도 독립의 기개는 오히려 푸르고 앉은뱅이 되어 벽만 바라보는 벽옹은 무릎은 꺾여도 뜻은 꺾을 수 없었다. 난세에 그런 시아버지는 시아버지가 아니었다. 스물일곱 꽃다운 손응교 여사에게 서른 살 창창한 남편을 시신으로 안겨 주었다. 자식도 죽음으로 내다 버리는 민족의 스승이 가는 길은 따로 있었다.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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