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확천금은 일장춘몽에 불과
성주사회를 광풍노도와 같이 몰아치던 금융다단계가 파산지경에 처했다. 짧은 기간 투자금의 300%에 달하는 고수익으로 거부(巨富)가 되겠다던 환상의 꿈도 물론 산산조각이 날 공산이 크다.
지난달 말경부터 모 다단계 회사의 회계장부를 비롯한 일체의 자료가 검찰의 압수수색 및 내사에 처해있고, 대표 조모 씨를 포함 8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곳곳에서 집단항의도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31일부터는 매일 투자자의 계좌로 입금되던 원리금 지급이 중단된 상태다. 관계자들은 “최악의 경우에도 원금회수는 가능할 것”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있으나 한 투자자는 “불법사실을 입증할 자신이 있을 경우에 검찰 내사가 이루어지는 통상적인 관례를 감안하면 거의 절망적”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이번 사태는 수년 전 불법다단계 영업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제이유사건을 연상시키고 있다. 1999년부터 영업을 개시했던 제이유는 사명(社名)을 수시로 바꿔가며 투자금의 250% 배당에 각종 수당 등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꼬드겨 투자자를 끌어 모았고, 문어발식 사세확장을 꾀하면서 불법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활발한 정치권로비를 펼쳤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권 중진인사들이 법정에 서는 등 곤욕을 치렀다. 한때 재계 매출 순위 1위를 자랑하던 제이유도 어마어마한 부채로 맥없이 무너졌다. 투자자 약 35만명이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었다. 당시 피해자들은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퇴직금, 아파트 담보대출 등으로 마련한 돈 밀어 넣고, 아들 딸 며느리 친인척 친구 지인들 몽땅 끌어들였으나 돌아온 것은 돈 잃고 가족과 친지들에게까지 버림받은 상처뿐이었다”고 하소연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郡의 사태도 영락없는 제이유의 재판이다. 시작 초기에는 의료기 대여사업에서부터 시작해 사명을 바꿔가며 경매물건을 사들여 리모델링 후 수익을 남기거나 백화점 또는 관광호텔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투자자는 초창기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의료기를 본적도 없고 부동산, 유통, 관광사업투자 등은 말로만 들은 얘기가 되고 있다. 불법다단계의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수법이다.
군내(郡內) 정확한 투자자 수는 알 수 없으나 추정되는 투자금액은 약 300억원, 혹자는 1천억원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우스개 소리이겠지만 관내 금융기관 금고가 빌 정도라고 하니 가히 그 규모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개인 당 투자규모는 구좌당 440만원짜리를 적게는 반 구좌, 많게는 100내지 200구좌를 가진 자도 있다고 한다. 100구좌면 줄잡아 5억원에 가까운 큰돈이다. 여유 돈 있어 투자한 사람은 그래도 낫다. 대부분 집과 전답 팔고, 잡히고 끌어온 빚이거나 전세금 빼서, 심지어는 자식 결혼적금까지 깨서 투자했다고 하니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계모임의 종자돈 불리겠다고 거액을 배팅한 경우도 있다.
일부에서는 많은 돈을 벌었다고들 하지만 이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매일 배당되는 돈을 찾아 원금을 건진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상술에 넘어가 소위 되감기(재투자/감는다고 표현)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원금을 건진 사람들도 자기 직위와 각종 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투자를 권유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 밑에 많은 투자자가 주렁주렁 달린 과장, 부장, 본부장, 센터장, 부회장, 수석부회장 등의 직책을 가진 자들은 주 1회 근무수당 17만2천원을 포함해 직책수당, 회원가입수당 등 이런저런 명목으로 월 200만원 이상의 부가 수당을 챙긴다고 한다.
이런 쏠쏠한 재미의 유혹이 이들을 점점 더 깊은 마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며, 초보자들에게는 환상을 심어주고 조바심 내게 만든다. 농사일에 전념했던 농부나 식구들 뒷바라지만 하던 주부, 구멍가게 수준의 소상공인들이 어디 가서 이 같은 대우와 거금을 만져보겠는가. 회의에 참석하고 수당을 챙겨봤던 한 투자자에 의하면 “그 판에 가보니 1, 2억은 돈도 아니더라 넘쳐나는 게, 눈에 보이는 게 돈이니 누군들 고생하려고 하겠나”고 술회한다. 더구나 업체 간부직원들은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라”고 권유한다. 돈 버는 모습 눈에 띄게 해 순진한 농촌사람 꼬드기는 수법이다. 자제력이 있는 인사들도 대거 가입했다고 하니 부를 향한 욕심은 불문가지인가.
또 구좌 수에 관계없이 가입 후 8개월만에 원리금 지급이 완료되고 가입 구좌가 없어지는 구조도 계속 재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족쇄를 채웠다. 모 씨는 “부족한 금액을 추가하는 등 되감기를 계속하다 보니 총 투자금이 얼마인지 알기조차 어렵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지역사회에 미칠 수 있는 파장은…
만약 불법이 입증되어 투자원금 회수가 불가능할 경우 미칠 파장은 가히 매머드급 태풍이 될 것이다. 아니 적어도 토네이도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고통을 겪고 있는 지역경제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투자금이 온통 빚잔치로 남게되면 주민들의 구매력은 떨어지게 되며, 이는 지역 상가 매출감소로 이어진다. 한 상인은 “지역경제를 위해서는 벌써 터졌어야 할 문제였다. 하필 가장 어렵다는 지금에 문제가 불거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6월경에 다단계업체가 한차례 내사를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을 염두에 둔 이야기다. 몇몇 금융기관장들도 “어려워도 예금 자연증가 분이 있게 마련인데 올해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내비쳤다.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주민들간의 화합분위기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점이다. 주변 인사들에게 투자를 권유해 가입한 자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차용증을 써 준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근저당설정으로 대출을 종용하고 보험회사를 통해 처리해 정작 당사자는 돈 한번 쥐어보지 못하고 투자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 갈등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벌써 모 인사는 “내가 권유해서 가입했으니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냐”며 도덕적 책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가정파탄 또는 가정파괴의 문제이다. 투자의 주체는 여성 그것도 주부들이 대부분이다. 책임문제를 두고 부부 간 불화는 비켜갈 수 없을 것이며, 더욱이 가중되는 부채상환 부담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칫 가정파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는 가뜩이나 인구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역사회에 이를 부채질하는 모양새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무튼 잘못될 경우 사태의 파장은 길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단계업체의 위기설이 그야말로 설(說)로 끝날지 현실로 비화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로 노력한 이상의 과도한 욕심은 언제나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