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을 새긴다는 말이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잊혀지지 않다라는 뜻으로
동물이 태어난 직후 경험한 대상에 집착하는 학습이란 뜻으로
이렇게 한 낱말에 뜻이 더께더께 쌓이는 경우가 있다.
말의 더께를 들추다 보면 미래가 무섭다.
중년의 사내 돋보기 코끝에 내려앉고
석재료에 온 힘을 다해 한 자 한 자 글자를 새긴다.
푸른 칼끝 콧등에 뻗쳤는지 땀방울 송송하다.
자리 털고 일어난 사내
붉은 인주 묻혀 종이에 대고 꾹 눌러 찍는다.
각인 선명하다.
젊을 적 두었으면 한 재산 되었을지도 모를
떼인 돈 기백만 원
아내는 머릿속에 푼푼이 다 새겨 넣는다.
육십 밑자리 깐 오늘도 오금 박는다.
지금도 아내의 머릿속 집요한 각인 중이다.
부화기 속 기러기 알 빽빽하다.
줄탁 이후
동력 행그라이더 발진 소리와 비행 영상을
갓 깨어난 고 작은 머릿속에
재봉틀로 박듯이 비좁게 이삼 일을 우겨넣는다.
각인학습 단단히 받은 인공부화 기러기 그에게 어미는
탄생 직후 영상으로 보고 듣던 행그라이더 이다.
본능을 엿가락으로 만든 저 각인
선명한 날인과 아내의 바가지를 만들기도 하고
기러기가 돌아갈 고향길 지우기도 한다.
단세포로 각인된 저 기러기
안태고향도 본성도 팽개치고
행그라이더 어미 따라 대오를 맞추어 비행을 한다.
기러기처럼 섬뜩하게 각인만 된 사이보그
열 맞추어 오는 발자국 소리 환청처럼 듣게 될 날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