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들고양이는 아니고 옛날과는 달리 거두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도둑고양이가 되었다. 고양이를 거두어 길러서 새끼 낳으면 오일장에 내다 팔던 시절 농경민이 팔 할을 넘고 곡물 저장시설이 허술하여 쥐들이 식량의 일 할 쯤을 가지고 가던 시절에는 쥐를 쫓느라고 칠남매 팔남매 자식을 키우면서도 고기값도 못하고 먹고 펀펀 노는 고양이를 거두어 길렀다. 그러나 오늘날은 자식 한둘도 귀찮아 절손하는 경우 많으니 고양이까지 신경 쓸 처지가 아니라서 고양이가 도둑고양이 안 될 턱이 없다. 야생 동물들은 자취가 없는데 소득과 비례해서 빌딩숲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많다.
먹이사슬로 보면 사람보다 아래지만 윗통 벗고 알몸으로 대결하면 열에 아홉은 고양이가 이길 것이다. 총칼 들고 설치는 포획작전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수를 쓰지 않는다면 고양이는 사람이 그리 두려운 존재가 아니고 적당히 피해 다닌다면 서로 충돌할 일도 별로 없다. 사람은 물론 개까지도 고양이의 민첩함은 따를 수 없고 도심에 호랑이나 표범이 출몰하지 않는 한 인간의 비위만 결정적으로 거스르지 않는다면 고양이를 쫓아낼 천적은 도심에 없다. 소득수준이 높아 버려지는 쓰레기만 해도 먹는 게 고양이 밥이니 식량은 무진장이다.
거기다 조상 대대로 가축 학습을 해 온 고양이는 인간에게 밉보이지 않으면서 회색도시 빌딩 숲에서 야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인간이 오글거리는 인간의 도시에서 인간과 동거하면서 인간의 비위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빈말이다. 인간은 우습게도 먹이나 주거지 때문이 아닌 기분학상 이유 때문에 고양이를 싫어한다. 냐옹냐옹 우는 고양이 소리가 시끄럽다는데 주로 어미 찾는 새끼나 오륙 남매 키우며 빨빨거리는 새끼 찾는 어미 소리가 좀 요란스러운데 이건 좀 봐줄만한 것 아닌가. 새끼에게 어미는 하늘이고 또 모성본능은 가장 거룩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인간은 고양이의 이것까지 유난스럽다고 싫어한다. 그보다 좀더 심한 것은 발정 난 암코양이와 몰려든 수코양이들이 질러대는 괴성이다. 주로 밤중에 몰려다니며 앙칼진 애기 울음소리를 내며 발광을 떨어 사람들이 좀 싫어하게 되어 있다. 또 냄새나는 뼈다귀가 있으면 담아서 내다버린 쓰레기 봉투를 발기발기 찢는데 인간들은 이걸 아주 싫어한다. 이런 것 때문에 인간들은 고양이를 몰아내려고도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도둑고양이라는 이름 자체도 이상해져 버렸다. 도둑고양이가 도둑질하는 것 거의 볼 수 없다. 사람이 버린 음식 찌꺼기 주어 먹거나 쓰레기통 뒤져서 닭튀김 족발 등의 뼈다귀로 배를 채우는 모양인데 전혀 궁색한 기미가 없다. 고양이라면 쥐를 잡아뜯으면서 입에 피를 묻혀야 하는데 그렇게 생존을 위해 입에 피칠갑을 하면서도 먹을 것이 모자라면 밤에 부엌에 몰래 숨어들어 고등어 동가리도 물어가고 고깃점이나 마른반찬 등을 슬쩍해서 붙여진 이름이 도둑고양이 아닌가. 도둑고양이가 본능을 거세당하고 인간의 풍요에 의지해서 손쉬운 생존을 추구하며 회색도시의 주인 버금가는 지위를 누리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미래도 어두운 인간의 앞날처럼 밝을 수만은 없다.
단순화되고 왜곡된 먹이사슬 체계에서 인간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과 같은 서열의 꼭대기를 어슬렁거리면서 회색도시의 소심스런 주인행세를 하는 고양이는 도시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인간과 마찬가지로 편리함에 길들어져 자신의 이름에 포함된 본성까지 잃어가고 있다. 상실의 연대기를 쓰는 도둑고양이 그들이 향하는 내일이 우리 인간과는 어떻게 다를지 은근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