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년(李兆年) 선생은 성주 출신으로 고려 원종 10년(1269)에 태어나 충혜왕 복위 4년(1343)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4대에 걸쳐 조정에 봉사한 충신이었다. 그는 성주이씨 중시조인 이장경(李長庚)의 다섯째 아들로 성주이씨 문렬공파 파시조이기도 하다. 그가 출사하여 활동하던 시기는 몽고의 지배 아래 있던 시절이었으며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원의 권력을 등에 업은 세력들이 왕위 쟁탈전을 벌리기 일수였다. 국권을 빼앗겨 속국이 된 것만도 부끄러운데, 왕위 계승과 국내 정치에 까지 사사건건 원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이 나라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선생은 고려 조정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여러번 원나라에 드나들며 국권과 왕통을 지키는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국충정으로 헌신한 관직생활은 매우 순탄한 편이었으나 그에게도 시련은 있어 관계생활 12년쯤 되었을 때 잠시 귀양살이를 한 다음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에 성주에 낙향하여 백화헌(百花軒)을 짓고 13년간 고향 생활을 하였다. 그의 시 이 동문선에 한편, < 이화에 월백하고……>란 시조가 청구영언 등에 한편 실려 전한다. 이 두 작품은 시적 의취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선생이 낙향하여 지내던 시기에 지은 작품으로 추측된다. 은 한시 작품으로 다음과 같다. 그리고 아주 잘 번역해 놓은 번역시를 덧붙인다. 爲報裁花更莫加(위보재화갱막가) 이 꽃 저 꽃 주섬주섬 심을 것 있나, 數盈於百不須過(수영어백불수과) 백화헌에 백화를 피워야 맛인가. 雪梅霜菊&#30099;標外(설매상국청표외) 눈 속에는 매화꽃, 서리치면 국화꽃, 浪紫浮紅也&#24543;多(랑자부홍야만다) 울긋불긋 여느 꽃 부질없느니. 선생이 지은 집이 백화헌이고 당호(堂號-집이름)를 따서 선생 자신의 호를 백화헌이라고도 하는데 이 시에서는 온갖 꽃(百花)보다 눈 속의 매화와 서리치는 계절의 국화면 만족한다고 하여 꼬장꼬장한 선비의 기개가 그대로 잘 나타나 있다. 선생의 현재까지 전하는 단 두편의 문학 작품 중 청구영언 등에 실려 전하는 시조 1수가 더욱 절창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시조이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곱씹어 우리 고장을 빛낸 선생의 작품을 다시 감상해 보자.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은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현대어로 번역을 해보면 배꽃 한 가지에 달빛이 희고 은하수 기울어서 밤이 깊은데 한 가지 봄꽃에 어린 마음을 슬피 우는 두견새가 어찌 알랴만 다정도 병이라서 잠못들어 하노라. ◐ 해동소악부에는 이 시조를 번역한 다음과 같은 한시가 전하는데 다시 번역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梨花月白三更天(이화월백삼경천) 배꽃에 달이 밝아 하늘은 삼경인데 啼血聲聲怨杜鵑(제혈성성원두견) 피 토하며 우짖는 한서린 두견새 울음은 &#29601;覺多情原是病(진각다정원시병) 다정이 원래 병이었음을 깨달았는데 不關人事不成眠(불관인사불성면) 인간사 무슨 상관이랴만 잠을 못 이루네. 현대역을 해 보아도, 해동소악부의 한역시를 보아도, 또다시 대역을 해보아도 원래 시의 작품의 맛이 나지 않는다. 이 시조는 앞에 보인 한시 과는 사뭇 정취가 다르다. 에서의 선생은 눈과 서리 속의 매화와 국화 같은 청렬한 절개와 지조로 무장한 꼿꼿한 선비의 기개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조에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초장(初章)을 보면 배꽃에 달이 비치고 은하수 한껏 기울어 눈앞의 꽃가지도 사방의 공간도 땅도 하늘도 모두가 한 빛인 희디흰 은세계를 이룬 밤에 대쪽같은 선비의 마음에도 춘정이 스며들고, 봄밤의 시린 정서는 그야말로 쇠와 돌의 심장에도 정감이 돌게 한다. 중장(中章)에 오면 은빛 서정 어린 이화(梨花) 한 가지를 두고 두견새는 서럽게 울어댄다. 자규는 두견새, 촉혼(蜀魂), 망제혼(望帝魂)으로 불리며, 나라를 잃고 죽은 임금이 다시 환생하여 고국을 그리워하며 목에서 생피가 솟도록 서럽게 울어대는 새라고 한다. 자규의 슬픈 사연을 익히 아는 선생은 그 울음 소리가 더한층 처절하게 들리고 가슴에 울린다. 마지막 종장(終章)을 보면 심금을 흔드는 은빛 서정과 두견새의 처절한 울음에 그의 마음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백화헌(百花軒)이라 이름 짓고도 그의 넓은 뜨락에 매화와 국화만 심던 고고한 선비가 교교한 백색 서경과 청렬한 두견새의 슬픈 울음 앞에서는 흔들리는 마음이 병이되어 불면의 밤을 새우게 된다. 시상의 흐름도 이렇게 태산같은 선비의 마음이 마침내 흔들려 요동치는 파도의 고랑과 이랑을 만들지만 표현 기법면에서도 뛰어난 수법을 구사하고 있다. 상징이란 면에서 이 작품을 보면 초장은 시인이 창조해낸 은빛 서정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중장은 누구나 동양의 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다 알고 있는 역사의 세계를 상징한 표현을 사용하여 문학적으로 말하면 창조적 상징과 관습적 상징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미지의 면에서도 초장은 은빛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한 반면 중장에서는 두견새의 청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종장을 보면 초장의 은빛 색채 이미지로 표현된 창조적 상징과 중장의 청각적 이미지를 구사한 역사적 상징을 절묘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비정한 선비의 마음에 다정을 심어 그 정이 병이 되는 역설을 만들고 불면을 밤을 지새우게 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선생의 시조는 빼어난 절창이다. 선생의 남아 있는 작품이 적어 접할 수 있는 작품이 한시 과 시조 1수 뿐이어서 유감이다. 선생의 < 이화에 월백하고……>는 시조가 확립되던 초기의 작품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꼽힐뿐 아니라 고시조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고매한 인격과 학문의 소유자로 이름이 드높다. 여기서는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지만 인격과 문명(文名)이 함께 드높은 선생같은 분이 성주에서 태어나셨음을 우리 모두 영광으로 생각하고 그분의 인격과 학문을 계승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종편집:2025-07-09 오후 05:43:02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