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내는 세금은 정부에게 공익사업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한편 소득분배를 변화시키는 ‘복지전환지출’의 재원이다. 이 말은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공익사업을 진행하는 정부나 자치단체는 당연히 납세자인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는 뜻을 포함한다.
따라서 정부나 자치단체는 과세권을 재정조달의 목적으로 반대급부 없이 국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세금을 부과·징수하는 고유권한일 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조세는 국가 또는 자치단체의 재정수입의 원천이므로 항상 납세의무의 주체인 국민에게 감사하며, 책임 있게 예산을 집행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과세권…납세자에 대한 책임을 의미
우리군의 경우는 어떠할까? 미안한 얘기지만 납세자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고, 심지어 ‘납세의무에 따라 당연히 낸 세금인데 어디에, 어떻게 쓰던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되는 이유를 금년도 예산안에서 대표적인 사례를 짚어보자.
공로연수자 부부동반 해외여행, 모범공무원 40여명의 부부동반 선진지 견학, 60명에 가까운 공무원 배낭여행 등에 관한 예산배정은 타당성과 성과면에서 재고의 여지가 많다.
특히 맞춤형복지제도(약 5억원)의 취지를 이해하기 힘들며, 건강보험료 보조비 외 별도로 개인당(약 600명) 30만원의 종합건강검진비를 지급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을 부정하는 의미와 함께 공공예산을 개인복리증진을 위해 지출한다는 비판을 받을만하다.
부서마다 청사관리직원 고용이 정말 필요한지, 재해부조, 퇴직공무원 공로패 제작비용까지 공공예산으로 편성하는 것은 취지와 명분에 합당한지 등은 이해하기 어렵다.
장비구입 및 사용도 합리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부서마다 다양한 복사기, 프린터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당 40∼50매를 복사할 수 있는 고속복사기를 평균 1대 이상 꼴로 임대 사용함으로써 과도한 임대료 및 관리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군 전체 고속복사기 임차료만 한해 1억5천만원에 이른다. 컴퓨터 등 전산장비 및 차량 구입, 군청 홈페이지 개편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 많은 업무추진비, 활동비 등을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구입 및 사용료를 별도로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예산낭비…납세자 존중 정신 부족
각종 사업비 책정도 너무 높다. 시중가나 개인사업체 발주시 공사비에 비해 두 배 가까운 공사비 책정을 누군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시중에 쓸만한 컴퓨터가 100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데 150만원이요, 월 4만원하는 정수기 임대료가 8만원이다. 단가 90만원의 물품이 200만원으로 둔갑한다. 민간용역은 무분별할 정도로 남발되고 있다. 사업마다 규정된 허용범위의 최고가에 아슬아슬하게 모자랄 정도로 짜 맞추는 재주는 정말 놀랍다.
물론 입찰·납품·조달 규정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겠지만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사업을 쪼개 수의계약을 추진(이유는 짐작하지만)하는 편법을 부리면서 이 같은 문제는 왜 그리 못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자체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설사 규정을 위반했다손 치더라도 예산절약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진정성이 입증되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정상참작이 될 것이며, 문책을 받아도 얼마나 떳떳한가.
주요사업을 추진하면서 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예산 사용에 대한 투명한 공개는커녕 감추기 일색에다, 낭비성 예산을 줄이려는 노력 등이 보이지 않으니 이면계약 의혹이 제기되고 검은 돈이 오갔을 거라는 추측 등 끊임없는 시비가 불거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예산을 자신의 호주머니 돈쯤으로 생각하고 낭비를 거리낌없이 반복하는 당국은 혹시 납세자인 군민의 침묵을 ‘관심 없음’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큰 착각이다. 당국은 납세자가 자신이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언젠가 “군민이 내는 지방세가 300억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 데 혈세 운운 할 수 있는가”라는 한 관계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농업에 종사하는 보통 가정에서 한해 직간접세로 내는 세금은 줄잡아 200만원을 훨씬 웃돈다. 이 돈으로 국도비가 지원되고 한해 군 예산규모가 성립된다. 고로 예산의 모두가 혈세인 셈이다. 이런 안이한 인식이 납세자를 존중하고 무서워함 없이 예산을 제 돈인 양 함부로 써대는 이유인지도 모를 일이다.
납세의무…감시기능 포함
집행부는 입맛에 맞게 예산을 최대한 부풀리고, 이를 심의 의결하는 의회는 타당성과 효율성보다는 적당한 타협과 계수조정 흉내만 내는 것은 납세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성주는 집행부와 의회 관계자들만 사는 고장이 아니다. 절대 다수의 군민이 죽을 때까지, 또 후손들이 살아 갈 공동생활체의 터전이다.
따라서 예산안에는 군민의 염원을 고스란히 담아내야 하고, 이를 위한 효율적인 재정계획은 선택이 아니라 절체절명의 과제이자 군민의 명령이다. 낭비성 지출을 과감히 줄이고 한푼이라도 아껴 유용한 곳에 투자하는 것이 납세자를 존중하고 무서워할 줄 아는 공인의 기본자세다.
군민들도 납세의 의무가 세금을 내는 것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낸 세금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공익과 복지사업에 정당하고 효율적으로 쓰이는지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까지가 의무이다. 또 그렇게 해야 납세자를 존중하고, 두려운 존재임을 인식하게 하며, 예산을 군민의 미래를 위한 투자재원으로 유도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백성은 하늘같이 귀한 존재이자 때로는 두려운 존재”라고 했다. 이는 마치 군민에게는 ‘귀하고 두려운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의무와 권리를 올바르게 이행할 것을, 공인에게는 책무 수행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일깨워 주는 가슴뭉클한 메시지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