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맥스웰 목사는 미국 레이몬드시 제일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엘리트 목사로서 교회 안팎에서 아주 존경받는 목사였다. 어느 금요일 날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인쇄공으로 일하다가 실직을 당한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 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러 왔다. 무슨 일이라도 좋으니 일자리를 좀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맥스웰 목사는 자기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몹시 바쁘니 미안하지만 스스로 일자리를 구해보라고 하면서 돌려보냈다. 주일 예배가 시작되어 “예수님을 본받고 따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그런데 열심히 설교를 듣고 있는 군중들 사이에 예상치 못한 훼방꾼이 뛰어들었다. 한 사나이의 커다란 목소리에 모두 깜짝 놀랐다. 지난 금요일에 맥스웰 목사에게 찾아와 일자리를 부탁했던 청년이었다. “죄송하지만 예배가 끝날 무렵 꼭 한마디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불쑥 나왔습니다. 나는 10개월 전에 직업을 잃었습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이 도시 구석구석 떠돌아다니다가 목사님에게 찾아갔더니, 매우 바쁘다고 하면서 다른 곳에 가보라고 하시더군요. 조금 전에 목사님께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같은 크리스천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아까 ‘주와 같이 가려네…’라고 찬송을 부르셨는데 과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저 빈민굴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배고픔에 허덕이면서 셋방 속에서 초라하게 죽어가고 있고,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큰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좋은 옷 입고, 호화로운 저택에 살면서 사치품을 사기 위해 먼 곳까지 놀러 가는 것을 볼 때 자꾸 의아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 말하고는 그만 그 자리에 픽 쓰러지고 만다. 목사는 즉시 그를 목사관으로 옮겼다. 그 다음 주일 설교를 마치고 맥스웰 목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지난 주일에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형제는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체는 지금 나의 서재에 누워있습니다. 그는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남겨 주었습니다. 오늘 새벽 그가 운명하면서 저에게 했던 말은 결코 잊을 수가 없으며, 이제껏 나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던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해 보지 않을 수 없음을 여러분 앞에 고백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나는 우리 교회 교인들 중에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고 자기 자신에게 물어본 다음에 그 해답을 따라 그대로 행하겠다고 진실 되게 서약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 후에 많은 사람들이 남아서 서약을 했다. 그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바뀌고 삶이 변화했다. 그 도시의 부정부패와 용감하게 싸웠다. 링컨 대학 학장이 앞장을 섰다. 인기 신문 데일리 뉴스에 술과 담배의 광고가 사라졌다. 막대한 유산을 받은 미모의 여성 버지니아 페이지는 빈민가의 불우한 자들을 돕는 일에 투자했다. 그래서 그 도시가 변화했다. 그 운동이 이웃 도시까지 번져 갔다. 이 이야기는 100년 전의 목사이면서 작가인 찰스 쉘던이 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What would Jesus do?)의 내용이다. 이 질문에 대해 답하는 사람들의 변화된 삶의 모습과 그 영향을 소개해 주고 있다. 살인마 강호순의 방에 ‘아함경 법구경’이 붙어 있었다.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어쩌면 그도 자신의 죄악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교회에도 드나들었다고 한다. 교회를 드나들며 그가 무엇을 듣고 어떤 것을 보았을까?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생명 경외의 말씀보다 “십일조를 바치면 부자가 된다”는 하등가치의 말을 더 많이 들었다면, 예수님 발자취를 따라 변화하는 모습은 보지 못하고 큰 교회 목사들이 재벌 회장 흉내나 내는 것을 보고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게 했다면 그의 생명에 대해 교회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 90년 전 3ㆍ1 운동 때는 1.5%(30만) 밖에 안 되는 기독교인이 민족의 운명 앞에 책임을 지고 선봉에 나섰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은 3ㆍ1운동은 기독교정신의 발로라고 했다. 오늘날 25%를 과시하는 기독교인이 3ㆍ1운동 때의 정신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무슨 난관인들 극복하지 못하랴? 먼저 목사부터, 장로부터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라.
최종편집:2025-07-09 오후 05: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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