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하면 참외, 참외하면 성주’로 온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 독보적 존재의 40여년 아성이 심한 도전을 받고 있다.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과, 지방화 시대에 지방 특산물 장려 시책에 맞춰 무슨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특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성주참외의 명성을 빙자한 자치단체가 있다는 사실이다. ‘상주참외’가 그렇고 함안의 ‘성주꿀참외’가 그렇다. 지명을 두고 왈가왈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왜 하필이면 ‘상주’이고 함안의 ‘성주…’인가라는 말이다.
우리 ‘성주참외’가 일반 공산품과 같은 배타적 사권(私權)의 보호를 받는 상표등록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유감스럽다. 그것은 농산품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이며 다만 그 종자만 명확히 밝히면 된다는 규정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포장용 박스만 의장특허를 얻어 독점적 무체재산권으로 보호받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성주참외’라는 거대 브랜드 가치에 비하면 너무 초라함을 숨길 수 없다. 짝퉁이 범람하는 시대이니 이 또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얼마나 ‘성주참외’를 갈망(?)했으면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음을 이해는 하지만 아무래도 뭔가가 허전하기 이를 데 없다. 더구나 함안의 경우는 좀 옹색함을 느끼게도 한다. 이럴 땐 남귤북지(南橘北枳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라는 사자성어 밖에 인용할 게 없다.
우리 토종자산 진돗개는 아무리 보존된 혈통이라는 순종 보증서가 붙어도 진도를 떠나면 ‘진돗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한다는데 참외도 그런 것은 아닐까?
‘상주참외’도 그렇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성주참외 생산자 몇몇을 회유하였거나, 우리 성주보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농토 자원을 가진 상주시가 강력한 인센티브를 줘가며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예상 판단을 해보기도 한다. 설령 그렇다 한들 그걸 탓할 수가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후발자가 철옹성 아성에 도전하려면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도 상식으로 알고 있다.
성주가 상주로 현혹되건, 아류가 본류를 잠식하건 브랜드 가치로나 40년 노하우로 축적된 ‘성주참외’가 내외의 심한 도전을 받고 있음을 인정하며 무한경쟁시대에 브랜드 하나만으로 안주할 수 없음을 가르치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전국 단위의 브랜드로 정착됐음은 물론 동남아 각 국으로 수출도하는 성주참외가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상주참외와 경쟁한다는 그 자체가 조금은 자존감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냉엄한 현실은 현실이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고 하던가…….
생산자는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려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소비자는 질좋은 농산품을 선호하고 있음이 대명제이다. 현명한 소비자는 ‘성주’와 ‘상주’를 혼동하지도 않을뿐더러 온 국민이 인정하는 성주참외의 독특한 생김새부터 잘 알고 있다. 가짜가 더 현란하다고 하여 비록 ‘짝퉁 성주참외’가 시선을 끌어도 맛도 형상도 판별할 줄 아는 우리들의 현명한 소비자들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듯 ‘40년 아성’이라는 말이 괜한 허장성세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모르는 세계인도 우리나라 초일류기업인 S사의 브랜드는 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를 보아 성공한 브랜드의 유무형의 가치는 실로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게도 한다.
우리의 인생사 때로는 역발상이 주효할 때도 있다. 함안이 ‘성주’를, 어감이 비슷한 상주가 ‘성주’의 의도적 차용이 바로 성주참외의 홍보가 되는 이런 경우가 아니겠는가.
앞서 언급했듯 품질개선의 끊임없는 연구는 드디어 껍질째 먹는 참외 개발에까지 이르렀으니 역발상도, 40년 아성도 다 의미가 없게 되었다. 오늘에 와서 60년대의 재래적 농사법과 비교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지만 과채류시험장이 있고 더욱이 박사(신용습 박사)가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든든하게 한다.
필자는 시장에서 수입청과를 취급하지만 성주참외를 찾는 애용가의 절대적 신임도와 호감도를 보며 한 출향인으로서 은근히 자긍심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더욱 사랑 받는 ‘성주참외’가 되길 바라며 모든 재배농가의 부농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