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령(시인)
그러니까 그때,
딱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라고
가로막는 호랭이 앞에서
흥, 택도 없는 소리, 일갈하며
떡판으로 내리치고, 이판사판 죽을 각오로
그 호랭이 이빨 하나라도 부러뜨렸으면
할퀴던, 꼬집던, 물어뜯던, 눈알 하나라도
핏발 튀게 후려쳐 주춤하게 했었더라면
그리하여, 오두막집에 엄마 먼저 도착했었더라면
그 붉은 수수는 아직 아무 색깔을 가지지 않은
무욕의 양식이었을라나.
무엇보다 하늘엔 햇님 달님도 생기지 않아
지상의 시시비비 가릴 일도 없고
세상은 아직 깜깜하게 고요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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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에 이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누이의 어머니가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호랭이가 달라는 대로 다 주고 마지막엔 자기 목숨마저도 잃고 말았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세상의 어머니는 강하다는데, 적어도 그 이야기 속의 어머니는 강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 어머니는 자기가 무너지면 다음 차례가 남매란 걸 왜 몰랐을까. 결국 떡도 다 주고 자기 팔다리와 몸뚱이도 다 내주고 남매의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되고 만 것이다. 호랑이를 이기기는 힘든 일이지만 그냥 순순히 모든 걸 다 내주는 것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이 시는 그런 문제의식 위에 서 있다. 호랑이가 썩은 동아줄을 끌어안고 떨어지는 바람에 수숫빛이 핏빛으로 붉어지고 오누이가 올라가 하늘에 해와 달이 생긴 셈이지만, 시인의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일이 없었으면 차라리 해와 달이 없어서 시시비비(是是非非)가 없을 것이고, 수수 역시 무욕(無慾)의 양식으로 남아 평화로운 세상의 양식이 되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배창환(시인. 성주문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