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자주
육·해·공군이
나타나게 매달
가짜생일을 챙기자는
아이디어를…
수원 사람들은 오줌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본 다음 산다는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개성사람, 인천사람과 함께 짜기로 소문난 사람들이다. 우리가 수원캠퍼스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함께 객지생활을 하는 친구들끼리 서둔동 웃거리에서 하숙생활을 하던 때의 일이다. 밥상은 언제나 김치와 나물종류로 차려져 있었다. 어느 날 저녁식사 때 한 친구가 들어오는 밥상을 보며 “오늘도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도다”라며 냉소하는 것이었다. 하숙생들의 영양상태가 염려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우리 네 사람의 하숙생이 모여 앉아 하숙집 밥상의 영양개선책을 논의하였다. 특히 우리 밥상에 자주 육군(쇠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고기종류), 해군(갈치나 아지 같은 생선종류), 공군(닭고기, 오리고기 등 조류고기)이 나타나게 하는 방안의 하나로 우리가 돌아가면서 매달 가짜 생일을 챙기자는 아이디어였다. 그 달 중순 어느 날이 내 생일이라고 했더니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돼지고기 무침을 해 주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일단 성공하였지만 일년에 생일은 한 번이지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짜낸 또하나의 방안은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잘 보이고 환심을 사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하숙집 젊은 아주머니는 남편이 6.25 전쟁터에서 전사를 하고 이른바 청상과부가 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내가 화장실을 가려고 변소 문 앞에 서있는데 안으로부터 나오는 담배연기가 나를 엄습하는 것이 아닌가? 좀 있다가 변소에서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였다.
호기심 가득 찬 이 소식을 같이 하숙하는 친구들에게 전하였더니 그중 어느 친구가 선뜻 주머니에서 양담배 한 갑을 꺼내 주면서 아주머니와 반찬 흥정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 날 하학 후에 마침 단둘이 있게 되어 나는 용기를 가다듬고 그 양담배를 아주머니에게 전달하면서 혼자서 가정을 꾸려가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는 둥 하면서 넉살을 떨었다.
우리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그 다음날 저녁 밥상은 육군과 해군의 공동작전으로서 오랜만에 우리는 목구멍의 때를 벗길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우리의 양담배 뇌물공세는 계속되었고 우리의 밥상에도 계속 고급 동물성 단백질이 올라왔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처절한(?) 노력이 내 키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10cm나 더 크게 한,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만숙종이라고 놀림을 받게 된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었으리라는 사실이다. 무릇 사람은 누구나 머리를 써야지.
일년이 지난 후 우리 네 사람은 뿔뿔이 헤어져야 했다. 누구는 자취하러 가고, 또 누구는 서울 친척집에서 통학하기 위해서였다. 살아 계시면 지금쯤 팔순이 넘었을 그 아주머니가 담배가 몸에 해롭다고 알려지면서 금연구역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계시는지? 건강하게 잘 지나고 계시는지? 안부가 궁금하다.
다음 호에서는 ‘화서동 하숙생 삼형제’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