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
중절모자에 가방을 든 차림으로
농대캠퍼스를 오간 것은
제법 폼 나는 일이다.
대학원 학생시절에 나는 한동안 화서동 골말이라는 동네에서 하숙을 하였다. 3년 후배인 전성억 동문, 4년 후배인 이광우 동문과 함께 세 사람이서 엮어간 하숙생활은 참 재미있었던 것으로 추억된다. 이런 저런 심부름은 막내 이광우 박사의 몫이었다. 원래 마음씨가 착한 이 막내는 유난히 큰 눈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늘 겁먹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유난히 초저녁 잠이 많았던 이 막내는 공부를 잘 하기로도 소문이 난 학생이었다. 학부 3학년생이던 전성억 대표는 성격이 부드러워서 누구하고도 잘 지내는 타입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우스운 소리를 잘했고 그가 함께 있으면 우리들은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이렇다 보니 전성억 동문에게 여학생들이 줄줄 따라 다니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전성억 대표는 내가 이불을 개어 올려라, 밥상을 내 놓으라는 등 잔심부름을 시켜도 군소리를 안 하고 시키는 대로 했던 것이 그 사람이 착해서가 아니라 그때 운수 불길스럽게도 내 강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을 잘 들어야 학점도 잘 딸 수 있을 테니까. 그 시절 대학원생들은 중절모자에 가방을 들고 다녔다. 이런 차림으로 서호를 지나서 농대 캠퍼스를 출퇴근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제법 폼이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세 사람은 이때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어서 졸업 후에도 늘 형제처럼 지내왔다. 우리 모두가 슬하에 손녀를 둔 지금에도 몇 달에 한번씩 부부동반으로 만난다. 화서동 정씨네 하숙집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서였는지 늘 호랑이를 잡았었다. 지금은 판도가 바뀌어서 삼형제 중 중간에 있던 전성억 고문이 판을 치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수집한 약간 야하고 우스운 얘기를 가지고 늘 우리를 매료하는 것이다. 아주 진한 농담은 안사람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그런 때에 하고…. 요새는 막내 이광우 박사도 우스운 얘기를 곧잘 하는데 더 가관인 것은 이런 환경에 물든 탓인지 안사람들도 한마디씩 보태면서 좌중을 웃음바다로 빠지게 하는 것이다.
요새 내가 약간 서글픔을 느끼게 된 것은 이 삼형제 내외가 모여서 하는 얘기는 주로 옛날이야기거나 손주 손녀 자랑뿐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속일 수도 어쩔 수도 없는 것인지 가끔은 전에 했던 얘기를 되풀이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 삼형제도 귀가 먹먹하고 눈이 침침해진 것은 아닌지? 하기야 우리를 좋아하던 화서동 하숙집 정씨 아저씨 내외는 물론 그 할아버지와 며느리까지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참으로 세월도 가고 인생도 구름처럼 지나가는 것이 아닐런지?
2005년에는 우리 집사람과 전성억 대표 내외가 그리고 2006년에는 이광우 박사가 칠순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친형제보다 더 가까이 지나는 우리 세 쌍의 벗들은 칠순 기념 해외여행이라도 떠나기로 한 바 있다. 이 세상에는 형제보다 나은 친구를 가진 사람도 있다더니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 런지? 형 같은 동생들과 함께 남은 여생을 즐겁게 살았으면 한다.
다음 호에는 놀라운 빈대의 생활력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