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8월 24일 제가 몸이 좀 불편해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중에 선생님께서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았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성주여중고 설립자 세 분 중에 마지막 남은 한 분이신데, 그렇게도 온후하고 겸허하고 올곧으신 분이신데, 생전에 찾아뵙지 못하고 이렇게 갑자기 슬픈 소식을 듣게 되다니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에 대한 감회가 무량합니다. 1952년 봄에 김봉익 선생이 임종룡 장로의 여자중학교 설립 약속을 믿고 학생을 모집해서 성주읍교회 구건물에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사정으로 당시 성광중학교의 교실을 빌려서 수업을 계속하다가, 남녀공학인 성광중학교에 편입시키려는 것에 반대하여, 거기서 나와 성산리 살망태 주설자 여사 아래채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때 그 마을에 살고 있던 류삼식씨가 그 딱한 사정을 보고, 그와 함께 ‘삼일제재소’와 ‘삼일정미소’를 경영하시는 선생님과 조동호씨와 의논해서 그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려고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성주면장이었던 배사원씨에게 청탁을 해서 면유지인 일제시대의 신사 터를 기증받아 거기에 목조건물 교실 3칸을 세워 1954년 신학기부터 신축교사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주여중고의 시작입니다. 제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그때였습니다. 선생님께서 학교법인 경심학원(耕心學園)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셔서 초창기의 어려웠던 모든 짐을 훌륭히 감당해내셨습니다. 초산의 고통을 몸소 겪으면서도 항상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학교법인 이름을 耕心學園이라고 선생님이 명명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깊으신 신앙과 이상과 철학이 담긴 이름이었습니다. 현모양처로서의 부덕을 갖춘 고결한 여성을 기르겠다는 큰 꿈이 스며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 이름을 좋아하고 찬양했습니다. ‘耕心’은 또한 선생님의 모토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한시도 마음 밭을 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서로가 종교는 달라도 한 번도 종교문제로 충돌한 일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허허 웃으시면서 항상 져주셨습니다. 제가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선생님과의 오랜 사귐의 덕택입니다. 선생님은 한학에도 조예가 깊으신 선비이셨고, 불도에 심취된 도인으로서 일생을 보내셨습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면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요동치지 않는 신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한번은 가을 수학여행 때 선생님을 함께 모셨습니다. 설악산 가던 산길에서 버스가 낭떠러지로 기울어져서 학생들이 대소동을 일으키고, 저도 정신이 아찔하여 허둥댔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앞 자리에서 눈을 감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계셨습니다. 선생님의 그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소동을 일시에 멈추고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고 세상에 대한 욕심 없이 부처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애쓰시면서 일생을 사신 선생님이셨습니다. 1971년 제가 선생님의 곁을 떠난 후의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조동호 이사가 군당 부위원장이었던 당시 공화당이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흔들리게 되자, 그 여파로 할 수 없이 학교 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학교 재단이 두 차례나 바뀐 후에 대구에서 열린 성주여중고 총동창회에 초청을 받고 참석했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현직 교장선생 두 분도 참석을 했기에 선생님의 안부를 물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선생님께서 학교 바로 밑에 살고 계시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잊혀진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서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 때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성주의 양반·선비의 인심은 변함이 없어, 성주여중고를 탄생시킨 그 공로를 인정하고 선생님을 한동안 성주문화원 원장으로 모시는 예우를 해준 데 대해 저는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학교설립 연혁이 존중되지 못하고 개교기념일이 재단이 바뀔 때마다 그 날짜가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시고도 선생님은 허허 웃고 넘기셨습니다. 요즘의 멋쟁이 며느리들 제 잘난 것 자랑할 줄만 알았지 시할아버지 생일 기억하며 챙길 줄 알고, 그 뿌리를 존중해줄 줄 아는 사람 어디 흔합니까? 그런 예의를 아는 며느리는 참 양갓집 딸입니다. 다른 사람 다 잊어도 선생님께 한문 과목을 수강한 성주여중고의 많은 딸들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과 선생님의 그 온후한 인품, 고귀한 덕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의 육신은 구속에서 벗어나셔서 천국의 자유를 누리고 계실 것을 믿습니다. 거기에서 먼저 가신 류삼식 이사와 조동호 이사를 다시 만나 도원결의 삼형제처럼 옛 이야기 나누시며 평안히 쉬시기를 기원합니다. 2009년 8월 26일 배태영 올림
최종편집:2025-07-09 오전 11: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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